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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은 틀렸다... 일과 삶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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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은 틀렸다... 일과 삶은 하나”

입력
2018.03.01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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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교수는 "일은 생계수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 역설한다.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일을 일답게 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다. 게티이미지뱅크
장원섭 교수는 "일은 생계수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 역설한다.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일을 일답게 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다. 게티이미지뱅크

대세는 바야흐로 ‘워라밸(Work & Life Balance)’, 곧 ‘일과 삶의 균형’이다. 일에 치여 살다 보니 일이 원수다. ‘호구지책’, ‘밥벌이의 비루함’에 대한 토로가 쏟아진다. 한걸음 더 나가 회사란 독립할 능력과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나 모인 곳이니 적당히 시간 때우면 그 뿐인 곳이요, 진정한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은 퇴근 혹은 퇴직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주장하다.

실제 사람들이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교 조사한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 결과를 보면, 미국(자아실현형), 일본(관계지향형), 프랑스(보람중시형) 등과 달리 한국은 대표적인 ‘생계수단형’ 국가로 분류된다. 이 흐름에 장원섭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반기를 든다. 인간은 일을 절대 놓을 수 없으며, 놓아서도 안 된다고.

28일 ‘다시, 장인이다’(영인미디어)를 낸 장 교수는 ‘워라밸’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는데, 엄밀히 말해서 ‘일과 삶의 균형’이 아니에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인 삶’과 ‘일이 아닌 삶’간의 조화에요.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을 삶 밖으로 내몰면 안되지요.”

인간은 일을 떠날 수 없다. 정신의학 쪽 연구를 보면 우울증, 중독증 같은 각종 정신질환은 ‘루틴한 일상의 부재’에서 온다. 하릴없이 노는 것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막상 그리 놀기만 하면 사람이 망가진다. 프리랜서의 삶만 봐도 그렇다. 소설가 김훈은 하루 200자 원고지 분량 3장, 김연수는 하루 5장,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5~6시간씩 분량이나 시각을 딱 정해 놓고 글을 쓴다.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오히려 루틴한 일상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역설이다.

장원섭 교수는 워라밸의 열풍의 탈출구는 장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원섭 제공
장원섭 교수는 워라밸의 열풍의 탈출구는 장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원섭 제공

실제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AI)의 공습을 두고 이제 ‘기본소득’을 고려해봐야 할 때라는 주장에 대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만 할 것 같은 진보 그룹들이 의외로 크게 호응하지 않거나 되레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장 교수는 이를 에스프레소에다 크림을 첨가한 커피에 비유했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큰 컵에 마시는 워커홀릭도 문제지만, 크림만 먹으며 순간의 달콤함만을 즐기다가는 건강을 잃게 된다”는 얘기다.

장 교수가 탈출구로 제시하는 것이 ‘장인(匠人)’이다. 일을 일답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장 교수의 제안은 작업 과정에 장인적 요소를 더 많이 집어넣는 ‘작업의 재구조화(Job-crafting)’다. 볼보의 스웨덴 우데발라 공장 실험이 한 예다. 우데발라 공장은 자동차 공장의 상징인 컨베이어벨트를 없앴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작업과정을 몇 개의 덩어리로 한데 뭉친 뒤 숙련공과 비숙련공으로 조직된 팀이 한 부분씩을 책임지고 하도록 했다. 일을 일답게 하기 위해서는 권한의 분산, 작은 성취의 경험 같은 것들이 장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 등 국내 유수 기업에 이런 내용의 강의도 했다.

구체적으로 작업방식을 어떻게 재조정해야 할까. 장 교수는 이를 위해 연구자와 기업인들간 모임인 장인성연구네트워크(http://jrn.kr/)도 만들었다. 작업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제 모델을 만들어보기 위해서다. “결국 어떻게 할 것이냐인데요. ‘장인육성프로그램’을 구성해본 것도 있고, 이를 어떻게 현장에다 적용시킬 것인지 앞으로 계속 연구해갈 생각입니다. 장인은 결국 제도, 구조, 교육의 문제니까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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