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ㆍ세종대 등 미투 봇물
“쉬쉬하던 학생들 하나둘 용기”
“회식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신 여학생이 있으면 볼에 뽀뽀도 했죠. 과방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여학생 뒤에서 포옹하기도 하구요.”
지난 24일 서울대 온라인 게시판에는 미대 ‘ㅎ ㅆ’ 교수에게 상습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 ‘폭로 글’이 올라와 파장이 일었다. 한 명의 피해 사실 고백에 또 다른 피해자가 등장했고 이들은 ‘(이 교수가) 여학생 손등에 뽀뽀를 하는 건 기본, 가슴도 슬쩍슬쩍 만졌다’고 주장했다. 한글 자음 ‘ㅎ’으로 표기된 문제의 교수는 공예 전공자로 알려졌다.
게시판 글 내용이 전부가 아니었다. 한국일보와 연락이 닿은 피해 학생들은 “이 교수가 여학생들 앞에서 주먹만한 고무공을 본인 가슴 쪽으로 가져가 여자 가슴을 만지는 모습을 표현하거나, 학과 MT 자리에서 여학생 가슴 모양을 묘사하며 망신을 주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남학생들은 “심지어 남녀를 가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미대 졸업생 A씨는 “남학생들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고, 볼에 뽀뽀를 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학생들의 피해 폭로에 대해 서울대 측은 “징계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피해학생들이 학내 인권센터에 신고하면 조사에 착수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본보는 이 교수에게 사실 확인 차 수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이 대학가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인 배우 조민기(52)씨나 ‘소나무 사진작가’로 알려진 서울예대 배병우(68) 교수 등 유명인 교수가 학생 제자 성추행으로 초기 등장한 뒤 오랫동안 쉬쉬하던 옛 제자, 학생들이 “나도 당했다”며 미투 대열에 줄 서고 있는 것이다.
제주대에서는 사범대학 C(53) 교수가 자신의 실험실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학생 엉덩이를 만지는 등 추행을 한 혐의로 이미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학생들에 의해 뒤늦게 터져 나왔다. 이 밖에도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김태훈(52) 교수와 박병수(44) 겸임교수의 옛 제자와 학생 대상 성범죄 의혹이 제기됐고, 서울예대 배병우 교수 성추행 폭로 이후 해당 대학 온라인 게시판에는 “비슷한 교수들이 있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부산의 한 사립대 온라인 게시판에도 성추행을 폭로하는 글이 28일 올라왔다.
대학가의 미투운동은 ‘이제 시작이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술이나 연극 등 예술계열 학과나 대학원 사회에서 교수의 ‘절대 권력’과 이들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인 권력 구조’를 감안하면 드러나지 않은 성 비위 행태가 한 둘이 아닐 것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미투 확산에 영향을 받은 피해 학생들이 더 이상 침묵할 가능성은 낮다. 이미 서울 주요 대학 온라인 게시판에는 가해자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피해’를 토로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해 학생들이 미투 대열에 동참하게 된 것은 법조계와 문화계의 미투와 온라인 공간에서 쏟아지는 유대와 공감의 목소리가 학생들에게 용기를 실어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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