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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 시대, 국적도 쇼핑하듯 선택

입력
2018.02.27 18:2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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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부족… 각국 취업 문호 확대

그림1 게티이미지뱅크
그림1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서는 ‘발틱 3국’의 하나로 불리는 에스토니아에 본사를 둔 글로벌 구인ㆍ구직 전문 스타트업 ‘자바티칼(jobbatical)’. 이 회사 직원은 40명이지만, 이들의 국적 수는 16개국에 달한다. 이 회사의 캐롤라이 힌드릭스 창업자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 사는 콜롬비아 출신의 한 엔지니어를 소개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숙박공유 플랫폼 ‘카우치 서핑’ 호스트로 일했고, 자바티칼의 멕시코 지사에서도 근무했다. 그런데 곧 거주지를 덴마크로 옮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 직원의 삶의 형태는 한 국가에만 머물지 않는 디지털 유목민의 전형적인 사례다. 5~10년 내에 보편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 산업구조가 정보기술(IT)에 기반한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다국적 기업의 숙련된 기술 인력 수요가 늘면서 이 분야 우수 인력의 삶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거주할 국가, 혹은 속하고 싶은 국적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정부ㆍ국적 쇼핑’ 시대가 열리고 있다.

IT매체 테크 크런치는 27일(현지시간) “국가 경영에도 일종의 시장 개념이 도입돼 고숙련 전문직들이 슈퍼마켓에서 ‘시리얼’을 고르듯 정부ㆍ국적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동성’이 새로운 ‘권리장전’이 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IT업계 인재 영입 전쟁이 치열했던 지난해는 세계 각국이 글로벌 인재를 잡기 위해 취업비자 문호를 경쟁적으로 확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취업 이민 문턱을 높이면서 그간 미국에 전문 인력을 뺏겨 왔던 나라들이 공격적 영입에 나섰던 것이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인구(1억2,700만명ㆍ2016년 현재)에 비해 고급 전문직 비자 발급(4,732명)이 턱없이 적었으나, 지난해 영주권법을 개정했다. 10년 이상 체류해야 내어 주던 영주권을 전문 인력에 한해 최단 1년 안에 취득할 수 있게 했다. 캐나다도 60일 내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스타트업 비자’ 프로그램을 다음달 중 시행한다. 캐나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분야 등에 대규모 펀딩도 계획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4월 스타트업 창업가, 투자자들이 입국 후 최대 4년까지 국내 거주와 근로를 보장하는 ‘프렌치 테크 비자’를 도입했다.

중국도 해외 유학파의 귀환을 유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프레퀸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을 포함해 중국에 투입된 벤처캐피탈 투자 규모는 650억달러에 달한다. 중국 정부의 투자유치 정책에 따른 것인데, 이렇게 몰려드는 해외 자금을 따라 해외 인재도 중국으로 함께 유입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2015년부터 개인 사업자도 고용주 후원 없이 비자를 취득할 수 있도록 투표권을 제외한 모든 권리를 내국인 수준으로 보장하는 전자시민권(e-레지던시)을 발급하고 있다. 사업허가증과 은행 잔고 증명서, 세금 내역서만 내면 된다. 일정 자격만 갖추면 에스토니아에 물리적으로 거주하지 않아도 전자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이 같은 ‘네트워크화된 주권’의 확산은 새로운 논쟁거리를 낳고 있다. 일부에서는 자유만 취하고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디지털 유목민의 이기주의를 걱정하고 있다. 경기 불황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도시 생태계의 중심축인 전문직 종사자들이 여건 좋은 다른 도시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럴 경우 남겨진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모든 문제를 떠안기 때문이다. 국제정책 분석가 앤 마리 슬러터는 “주권의 범위가 국가 단위 이상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주권의 본질은 구성원에게 권리와 의무를 함께 부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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