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문재인 대통령과 자원봉사자들/사진=연합뉴스
“시작인가 싶었는데 끝이라니 시원섭섭합니다.”
지난 24일 밤 이승훈(30ㆍ대한항공)의 매스스타트가 열린 강원도 강릉의 스피드 스케이트 경기장(강릉 오발)에서 만난 여성 자원봉사자 윤모씨(20)는 “고생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올림픽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내 인생에서 또 있겠어요. 앞으로 살아가는데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25일 폐막식장에서는 대학생 자원봉사자 김모씨(22ㆍ여성)가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웃으면서도 “처음에 일부 문제가 불거지고 난 뒤 조직위 차원에서 처우와 관련한 수정과 시정을 많이 해줬다. 자잘한 불만들이야 조금씩 있겠지만 우리들은 서로 화이팅하며 잘 지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자원봉사자들을 둘러싼 논란들이 많았다. 대회 직전부터 말썽이었다. 셔틀버스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아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 자원봉사자들이 1시간가량 떨어야 했던 일이 알려지며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새로운 소통 창구인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힘은 무섭게 발휘됐다. SNS를 중심으로는 자원봉사자들의 식단ㆍ숙소ㆍ온수 등 생활과 관련한 불만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대회 중간에는 귀빈(VIP)석을 놓고 자원봉사자들에게 막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직접 사과하는 일이 빚어졌다.
겉으로는 자원봉사자들의 불만이 상당한 듯 비춰지지만 실상은 달랐다. 대회 기간 동안 현장에서 만나고 얘기를 나눠본 대다수의 자원봉사자들은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불만보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러 전라도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최모(21ㆍ남성)씨는 “산악 지역 등에 배치된 봉사자들은 추위 때문에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실내와 실외에서 일하는 봉사자들의 유니폼이 일률적으로 똑같았던 건 안타깝다”면서도 “대부분은 자원봉사자로 평창올림픽에 참여하게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5:1의 경쟁률을 뚫고 여기에 왔다. 대학 친구들도 여럿이 같이 지원했는데 나밖에 된 사람이 없다”고 멋쩍게 웃으며 “나중에 취업을 할 때 좋은 이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외모를 보고 선발한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돌 만큼 선남선녀들로 이뤄진 자원봉사자들은 언어 장벽이 있는 외국 선수, 언론 관계자 및 관광객들에게는 특히 엄청난 힘이 됐다. 어디서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유니폼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은 항상 친절한 미소를 띠고 버스 타는 방법이나 길 안내, 여러 가지 궁금한 점들을 설명해줬다. 이들 중에는 유창한 외국어 능력을 자랑하는 이들도 있고 말이 안 통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응대했다. 헤매는 외국인이나 사람들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 묻고 도움을 줬다. 추위를 참으며 오랜 시간 버스를 기다릴 때면 말동무를 해주고 휴대폰으로 신나는 음악을 틀어 지루함을 달래주는 자원봉사자들도 눈길을 끌었다.
폴란드에서 온 한 방송기자는 “자원봉사자들이 없었으면 난감한 상황이 여러 번 겪을 뻔 했다”면서 “이들의 친절에 감사한다. 미디어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도 아주 만족스러웠고 김치도 너무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60대의 지긋한 노인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뚝 떨어진 날 강릉 미디어 센터에서 버스 안내를 돕던 박모(66ㆍ남성)씨는 “전체 90% 정도가 대학생이지만 10%는 나처럼 나이가 든 자원봉사자들도 선발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에서 자꾸 자원봉사자들의 처우와 관련된 불만들이 보도된다는 물음에 대뜸 입고 있던 유니폼을 열어 보이며 “안쪽을 한번 만져봐라. 이게 바람은 잘 막아주지만 보온이 안 돼 어떨 때는 굉장히 춥다.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봐야 해 조직위에서는 따로 외투를 못 걸치게 한다. 그게 불만이라면 불만일 뿐 솔직히 다른 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추위에 흐르는 콧물을 닦던 박씨는 “물론 미흡한 점도 있다. 자원봉사자들 숙소가 동해나 속초 등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거리상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서도 “우리는 하루 8시간씩 교대를 한다. 나 같은 경우 영어와 일본어가 약간씩 되는데 30년 전 서울 올림픽에서도 자원봉사를 했다. 내 인생에 이런 기회가 다시 언제 오겠나 싶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해 참여하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26일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는 이들의 노고에 대해 "평창올림픽의 자원봉사는 그 전 올림픽과 수준 자체가 달랐다"며 "그들은 패션 크루라는 공식 명칭에 걸맞게 끊임없는 에너지를 발산했다. 친근하고 영어를 매우 잘하는 데다 항상 미소를 짓는 이들은 한국의 맹추위 속에서도 선수, 감독, 취재진, 관중의 기분을 북돋웠다"고 극찬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6년 12월 발행한 '자원봉사자의 사회적ㆍ경제적 가치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자원봉사 활동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최소 1조9,641억원에서 최대 3조2,924억원이다. 평창올림픽 역시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예산 절감 등의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학업과 생업을 잠시 내려두고 국가적 대사인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길게는 한 달 여간 뒤에서 묵묵히 고생한 1만4,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야말로 평창올림픽의 진정한 챔피언이고 금메달리스트다.
평창=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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