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아닌 평창서 만나
‘천안함 폭침’ 배후 인물 논란에
접견 후 장소ㆍ사진 공개 안 해
#文 대통령 ‘중재외교’는 탄력
北, 美와의 대화에 호응 밝혀
성과 내기까진 양국 설득 필요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접견은 예상보다 하루 이른 25일 평창 모처에서 비공개로 조용히 진행됐다. 앞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베풀면서 환대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 정서를 고려해 김 부위원장과의 만남 장소와 방식을 신중하고 엄중하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 부위원장이 접견에서 “북미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한반도 정세 변화의 새 장이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청와대가 ‘천안함 폭침’과 관련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수용한 건 비핵화를 위한 북측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선 북미대화가 필수적이고, 한국 입장에선 북한과 미국 양쪽을 설득해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 게 필요했던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김 부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대화가 열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남북관계가 앞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진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김 부위원장이 “북미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양국의 접촉이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한사코 언급을 피한 비핵화 문제가 남북대화 테이블에 오른 것도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강조한 것도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전향적 태도를 촉구한 것이다. 청와대가 공개하진 않았지만 이날 회동에서 비핵화 대화를 두고 남북 사이에 깊은 얘기가 오갔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중재외교도 보다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개선 입구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중단을 요구하는 입장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호응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반도 긴장 지수는 낮아지고 북미관계 개선 가능성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앞서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에 응할 뜻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의 중재 노력, 북한과 미국의 호응이 향후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전망이다.
청와대는 다만 천안함 폭침 배후로 지목되는 김영철 부위원장 의전 수준을 놓고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김 부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을 만날 것이란 얘기가 나왔지만 이날 회동은 청와대 밖에서 비공개로 이뤄졌다. 의전 수준을 낮춘 것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통일대교에서 저지 농성을 벌이고, 천안함 유족들이 김 부위원장의 방남 반대 기자회견을 연 데다가, 미국 국무부가 “김 부위원장이 천안함기념관을 직접 가보기 바란다”는 등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자 이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또 문 대통령과 김 부위원장의 접견 후에도 사진, 장소조차 공개하지 않는 등 남북관계 개선 속도를 둘러싼 여론도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통일부도 23일 발표한 ‘평창올림픽 북한 참가 관련 종합 설명자료’에서 “이번에 드러난 국민들의 대북인식 변화를 직시하겠다”,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대북정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남북관계 여론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지용 기자cdragon25@hankookibl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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