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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희생, 때론 악역 컬링 영광의 뒤에 선 ‘부녀’

입력
2018.02.26 04:4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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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컬링 김민정 감독ㆍ부친 김경두 전 회장

대표팀 “덕분에 새 역사 썼다”

25일 여자 컬링 결승에서 스웨덴에 패한 뒤 울먹이는 김은정(오른쪽)을 위로하는 김민정 여자대표팀 감독. 강릉=연합뉴스
25일 여자 컬링 결승에서 스웨덴에 패한 뒤 울먹이는 김은정(오른쪽)을 위로하는 김민정 여자대표팀 감독. 강릉=연합뉴스

한국 컬링의 기적 같은 은메달 획득을 말할 때 이 부녀(父女)를 빼놓을 수 없다. 김경두(62) 대한컬링경기연맹 전 회장과 그의 딸인 김민정(37) 여자대표팀 감독 이야기다.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초반 컬링을 국내에 도입한 선구자다. “사람들이 하도 ‘킬링’이라고 해서 ‘컬’이라고 고쳐주는 게 일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컬링이 생소하던 시기였다. 가족들을 데리고 대구 빙상장으로 가 페인트로 하우스를 그려 가며 컬링을 익혔다. 스피드스케이팅 연습이 없는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에 주로 연습해 훈련 후 새벽 청소차를 보는 게 일이었다. 그는 사유지라도 내놓겠다고 애원한 끝에 경북도와 경북컬링협회, 의성군 도움을 받아 2006년 국내 최초 컬링훈련원을 지었다.

그러나 정작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앞두고 컬링연맹은 내홍에 빠졌다. 자격 없는 선거인단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돼 지난 해 6월 전임 회장 직무가 정지됐고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비상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직무대행 회장을 맡았던 김 전 회장도 ‘60일 내에 새 회장 선거를 치르라’는 규정을 못 지켜 징계 위기다. 그는 올림픽 기간 AD(등록) 카드를 못 받아 매번 표를 사서 경기장을 찾아야 했다.

여자 컬링 선수들은 은메달을 딴 뒤 가장 먼저 관중석 김 회장 앞으로 가 감사 인사를 올렸다. 스킵 김은정(28)은 “항상 저희를 밀어주시고 이끌어주신 김 전 회장님 덕분에 새 역사를 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마지막 승부를 못 넘었지만 자기 할 것을 다해줘 고맙다”며 딸 같은 선수들에게 고마워했다.

경북 의성에 있는 경북컬링훈련원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회장.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김 전 회장에게 보낸 감사편지들이 뒤에 보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의성에 있는 경북컬링훈련원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회장.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김 전 회장에게 보낸 감사편지들이 뒤에 보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민정 감독은 컬링이 처음 보급될 때 캐나다에서 이 종목을 처음 배워온 1세대 선수 출신이다. 2010년 경북체육회 창단 멤버로 4년 전 소치올림픽 출전을 노렸으나 경기도청에 태극마크를 내준 뒤 은퇴했다. 여기에도 남다른 ‘희생’이 숨어 있다

현역 선수로 뛰어도 될 충분한 기량을 갖췄지만 더 큰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저변이 열악한 탓에 선수를 이끌 지도자가 없는 한국 컬링의 현실 때문이다. 올림픽 기간에도 김 감독은 악역을 맡았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자 그가 중간에서 조율에 나섰다. “선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는 원성이 쏟아졌지만 김 감독은 올림픽 경험이 처음인 선수들이 흔들릴까 봐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김 감독은 “오늘의 결과는 선수들이 잘 따라주고 같이 뭉쳐서 이겨낸 덕”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스웨덴에 패한 뒤 울고 있는 김영미(왼쪽)를 꼭 안아주는 김민정 감독. 강릉=연합뉴스
스웨덴에 패한 뒤 울고 있는 김영미(왼쪽)를 꼭 안아주는 김민정 감독. 강릉=연합뉴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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