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 종목은 스타트 순위가 곧 최종순위라는 게 통설이다. 그만큼 탑승하기 전 썰매를 밀며 달리는 스피드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25일 이런 통설에 역행하면서도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다.
봅슬레이는 일반적으로 출발과 함께 기록을 측정하는 타종목과 달리 출발선을 15m 지났을 때부터 기록을 측정한다. 이 구간이 지나기 전 선수들은 모두 썰매에 올라야 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15m 지점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썰매에 올라타는 것이 보통이다. 썰매가 추진력을 얻기 전까진 최대한 밀어야 초반 속도가 잘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원도 평창 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봅슬레이 4인승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의 스타트 기록은 저조했다. 이틀에 걸쳐 4차 주행을 치르는 동안 한국 대표팀의 스타트 기록은 4초92~4초94였다. 29개국 가운데 11~13위권으로 메달권과 거리가 먼 기록이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은메달이었다. 이후 주행에서 빠르게 속도를 붙이면서 불리한 스타트 기록을 만회했다는 얘기다.
이는 올림픽슬라이딩센터의 특성을 활용한 맞춤형 전략을 펼친 덕분이다. 올림픽슬라이딩센터 1~5번 구간은 커브 사이의 간격이 좁고 회전 각도도 커서 매우 섬세한 조종이 필요하다. 이용(40) 총 감독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15m 구간을 끝까지 뛰면 1번 코너에서 가속력이 되레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다”며 “최대한 빨리 썰매에 타서 가속도를 붙이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대표팀의 파일럿 원윤종(33) 역시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스타트 기록을 잘 나오게 할 수도 있었다”면서 “슬라이딩센터 1~4번 코너를 빠져나갈 때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최대한 빨리 탑승했고 이를 통해 공기저항을 줄인다는 승부수를 던졌다”고 밝혔다. 탑승 구간까지 썰매를 밀며 달릴 경우 스타트 기록에서는 유리할 수 있지만 그만큼 선수들의 무게를 썰매에 실어 가속도를 얻는 데에는 오래 걸린다는 말이다.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훈련 기간 슬라이딩센터 트랙을 총 452번 주행했다. 이 과정에서 트랙 구석구석을 샅샅이 파악해 역발상적인 전략을 짜냈고, 결국 봅슬레이 역사상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주인공이 됐다.
평창=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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