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헬멧 쓰다 보청기 떨구고
원윤종ㆍ서영우 첫 주행 때
썰매 뒤집혀 미 경기장 파손 민폐
하루 밥 15공기 먹고 근력운동
네명 몸무게 합치면 419㎏
봅슬레이 구경도 못 해본 청년들이 국가대표 꿈 하나 품고 썰매에 뛰어들었다. 25살 원윤종, 19살 서영우, 21살 전정린, 24살 김동현. 넘어지고 다치고 깨지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평창올림픽 결승선을 통과하는 행복한 장면을 머리 속에 그렸다. 그렇게 이 악물고 버티기를 8년, 25일 강원 평창군 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처음 나온 메달이었다. 모두를 놀라게 한 그들의 질주를 사람들은 ‘기적의 레이스’라 불렀다.
컬링에 ‘팀 킴’이 있다면 봅슬레이 대표팀은 ‘팀 원’이다. 봅슬레이에서는 파일럿의 성을 따서 팀 이름을 짓는다. 남자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은 김동현의 친구들이다. 김동현은 2009년 처음 선발돼 ‘한국 썰매의 개척자’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와 함께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2010년 6월 한국에 스타트 연습장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국가대표를 뽑기 시작했는데 김동현이 당시 축구를 함께 하던 원윤종과 서영우를 추천했다. 2011년 김동현의 과 후배 전정린이 합류하면서 지금의 라인업이 꾸려졌다.
시작은 좌충우돌이었다. 김동현은 선천적으로 양쪽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청각장애 3급이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보청기를 꼈고, 입술의 움직임을 읽으며 어렵게 대화를 나눴다. 시합 때 출발을 하려고 헬멧을 쓰다가 보청기가 떨어져 봅슬레이 밑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 원윤종과 서영우는 2010년 11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첫 주행을 했는데 썰매가 부딪히고 뒤집히며 경기장까지 파손한 탓에 대회 일정이 연기되기도 했다.
기적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원윤종(109㎏), 전정린(102㎏), 서영우(104㎏), 김동현(104㎏)의 몸무게를 합하면 419㎏이나 된다. 선수들의 몸무게가 더 나갈수록 가속도가 많이 붙는다. 이들은 하루에 밥 15공기를 먹어가며 근력운동을 했다. 근육 생성에 도움 되는 음식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주로 닭가슴살과 같은 맛없는 음식을 입에 구겨 넣었다. 경기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들은 입을 모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다. 서영우는 “몸에 안 좋은 음식이나 나트륨 들어간 음식을 그 동안 못 먹었다. 라면, 부대찌개, 냉동식품 등을 원 없이 먹고 싶다”며 입맛을 다셨다.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은 올림픽 직전까지만 해도 전력 외로 평가 받았다. 세계 랭킹은 평창올림픽 출전 팀 중 최하위인 50위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 앞서 슬라이딩센터 베뉴 프레스 매니저가 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조차 못 할 정도로 무명이었다.
대표팀의 파일럿 원윤종은 지난 19일 2인승 경기 후 숙소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고 한다. 금메달 기대를 모았지만 6위에 그친 대표팀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냈다. 부진 설움을 눈물로 모두 씻어낸 대표팀은 더욱 하나로 뭉쳤다. 2인승 경기에 나서지 못한 김동현과 전정린도 원윤종의 주행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각자의 헬멧에 건, 곤, 감, 리 문양을 새기고 태극기 아래에서 하나로 뭉쳤다.
서영우는 이날 경기 후 “오히려 2인승 부진이 있었기에 오늘 은메달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원윤종은 “개개인의 기량은 유럽, 북미 선수들을 앞서지 못 하지만 네 명이 뭉치는 힘은 강하다”라며 “선수뿐 아니라 코칭스태프, 연맹 등 모든 분들이 함께 만든 은메달”이라고 강조했다.
평창=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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