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는 이번 올림픽이 자랑스럽다
이번 겨울 올림픽에 나는 나의 고향이자 대회 개최지인 강릉의 대표 성화 봉송주자로 참가했다. 지난 17일 동안 대회장을 환하게 밝힌 ‘모두를 빛나게 하는 불꽃(Let Everyone Shine)’ 아래 올림픽과 관련하여 잊을 수 없는 일 몇 가지가 있다.
11년 전 여름, 지구 반대편 과테말라에서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될 때였다. 그날 아침 텔레비전 생중계를 지켜보며 나도 내 고향 사람들도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우리 대한민국 평창이 결정되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막판에 국력과 물량 공세를 앞세운 러시아의 소치로 결정되고, 우리가 확인했던 것은 땅이 꺼질 듯한 탄식과 눈물 속에 주저앉은 강릉과 평창의 현지 표정이었다.
그 쓸쓸한 기억 속에 서울에서 강릉으로 오가는 길 중간 산중턱에 화단처럼 가꾸어놓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예정지’ 글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처음엔 거기에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 예정지’라고 쓰여 있었고, 그 다음 어느 시기엔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 예정지’라고 쓰여 있다가 다시 숫자만 바뀌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예정지’라고 써놓은 것이었다.
거기에 ‘예정’을 떼는 일이 12년 걸렸다. 마침내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결정되고, 그 길 위에 서울 강릉 간의 KTX가 새로 놓였다. 대회 기간 동안 KTX를 타고 고향과 경기장에 갈 때마다 저절로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유교 전통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켜온 가형은 고희가 바로 내일인데도 본인 생애에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느냐고 설날 연휴에도 자원봉사자로 매일 경기장에 출퇴근했다.
유치도 힘들었지만, 대회가 열리기 한두 달 전만 해도 나라 안팎으로 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가. 북핵 문제로 세계 정세는 북극권의 한파처럼 얼어붙고, 미국과 북한은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을 할 것처럼 연일 막말을 쏟아냈다. 그런 기류 속에 대회 참가국들 가운데 자국 선수단의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지 않으면 선수를 파견하지 않겠다고 한 나라도 많았다. 그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러다가 정말 대회나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 마음 졸인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속에서 여자하키 종목에 남북단일팀이 만들어지고,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한 선수의 공동입장이 결정되고, 북한 예술단과 응원단이 남쪽으로 내려와 이 대회의 분위기를 바꾸어놓았다. 대회가 열리기 불과 한 달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남북간의 대화무드가 이루어지고, 대회는 안전 속에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스포츠가 스포츠만의 일이 아니라 곧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우리는 대회가 개최되는 동안 바로 우리 눈앞에서 똑똑히 보고 느꼈다.
경기장에서도 무엇보다 보기 좋았던 것은 우리 선수들에게도 국민들에게도 이 대회가 오직 금메달을 위한 대회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예전 한 때 우리는 체력이 국력이라는 슬로건 아래 각고의 노력 끝에 은메달을 따고도 국민들 앞에 죄를 지은 사람 모양 분해서 울고 한숨 속에 고개를 숙이던 선수를 보아 왔다. 이번 대회 동안 한 순간의 실수로 메달이 멀어져도 서로 부상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따뜻한 광경도, 또 국적을 떠나 진한 우정을 나누는 선수들의 포옹에서 금메달 이상의 감동도 맛보았다.
스포츠의 감동은 바로 저런 것이라는 걸 우리는 이 대회 동안 여러 차례 경험했다. 남북단일팀을 이룬 여자 아이스하키뿐 아니라 전국민들에게 ‘영미 신드롬’을 일으킨 컬링 경기도 이 대회의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이번 동계올림픽이 2010년과 2014년에 열리지 않고 2018년에 열렸기에 더욱 성공적이고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대회였다고 우리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대회였다. 대한민국 만세, 2018평창 만세를 이룬, 내 고향 강원도가 무한히 자랑스러운 대회였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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