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의 돌부처’도 펑펑 울게 만든 감동적인 명승부였다.
김은정(28) 스킵(주장)이 이끄는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23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준결승에서 후지사와 사쓰키(27) 스킵의 일본을 치열한 연장 승부 끝에 8-7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은 예선에서 일본에 당한 유일한 패배(5-7)를 깨끗하게 설욕하며 은메달을 확보했다. 한국은 남녀 통틀어 아시아 국가 최초로 결승에 오르는 기록도 썼다. 컬링은 1998년 나가노 대회부터 정식종목이 됐는데 아시아 국가 최고 성적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 때 중국 여자 팀이 딴 동메달이다. 나머지는 유럽과 북미가 싹쓸이했다.
이날 한일전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7-7로 팽팽하게 맞선 마지막 10엔드. 후공은 한국이었고 스톤은 단 한 개만 남았다. 김은정의 마지막 샷이 일본의 노란 스톤을 앞에 멈춰 중앙의 버튼 가까이 서는 순간 경기장에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울러 퍼졌다. 짜릿한 한국의 승리였다. 김민정 여자대표팀 감독 옆에 앉은 김초희는 눈물을 쏟았고 한국 선수들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멋진 샷을 성공하고도 무표정으로 일관해 ‘빙판의 돌부처’라 불리던 김은정도 감격에 겨웠다.
그는 이번 대회가 낳은 최고 스타다. 경기 내내 큰 안경 너머로 매서운 눈빛을 쏘고 환상적인 샷으로 점수를 내거나 승리한 뒤에도 좀처럼 웃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트레이드마크인 둥글고 큰 안경에 빗대 ‘카리스마 안경선배’란 별명도 붙었다. 평소 안경을 벗은 모습을 잘 안 보여준다는 김은정은 짜릿한 승리에 안경을 벗고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관중들에게 연신 손 키스를 날리고 경례를 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그는 경기 뒤 “인터넷은 못 쓰고 있지만 컬링 역사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도 역사를 쓰고 싶었고 오기 전에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 그런 무게를 들어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예선전에서 1경기 유일하게 진 게 일본이었는데 돌아가는 길이 너무 화가 났다. 하필 일본과의 경기에서 져서 너무 화가 났고 관중 분들이 응원 많이 해주셨는데 죄송했다. 준결승에서 일본을 만나 좀 더 우리에게는 목표 의식이 생겼다. 그래서 더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승리를 결정짓는 마지막 샷에 대해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개인적으로 드로우 샷(하우스 중앙 버튼에 도달하기 위한 샷)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일본전에서는 마지막 샷으로 드로우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국에는 내게 드로우가 왔고 초반에는 망설였지만 (김)경애가 ‘그냥 드로우 해야 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다. 나는 이걸 해야 이긴다’는 마음으로 던진 게 들어갔다”고 미소 지었다.
한국은 금메달에 도전한다. 폐막일인 25일 벌어질 결승 상대는 이날 영국을 10-5로 누른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세계랭킹 2위의 강호지만 한국은 예선에서 이미 7-6으로 승리한 바 있다.
결승전 상대인 스웨덴에 대해 김은정은 “스웨덴이 공격적인 샷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리는 깔끔하게 기다리는 입장으로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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