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사진작가 케빈 아보시
장미사진 원본을 암호화 한
가상화폐 로즈코인을 발행
코인 구매자에 작품 소유권 인정
10명에게 총 100만 달러에 팔려
현대미술의 개념을 재정립한 예술가인가, 21세기판 봉이 김선달인가. 사진작가 케빈 아보시는 화제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지난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내놓은 신작 ‘포에버 로즈’를 100만달러에 매각하면서부터다. 이 작품은 블록체인 기술을 사진에 접목시켰다. 2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기자들을 맞은 케빈 아보시는 “모든 작품이 걸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예술의 가치는 개념적으로 존재하고, 블록체인 방식의 예술 작품은 새로운 표현 방식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가 계속해서 예술작품을 만들면서 스스로 상품화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코인(coin)’이 되는 건가? 스스로 질문한 적이 있고, 그래서 실제로 코인이 되어 나를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제 피를 뽑아 10만개 가상 화폐로 전환한 ‘아임 어 코인(I am a coin, IAMA)’ 프로젝트를 요즘 진행하고 있습니다.”
‘포에버 로즈’는 이 프로젝트를 흥미롭게 지켜본 모바일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그룹 이노베이션스가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함께 방한한 앤디 티엔 아시아 이노베이션스 대표는 “예술에 관심이 많던 차에 케빈 아보시의 ‘IAMA’ 프로젝트를 알게 됐고, 암호 화폐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포에버 로즈’ 판매 수익금은 어린이 교육 자선단체인 코더도조 재단에 기부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사진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시킨다는 걸까. ‘포에버 로즈’ 디지털 사진 파일이나 프린트에 블록체인 기술이 들어간 건 아니다. 다만 가상화폐 특징을 십분 활용해 예술 작품 소유권의 개념을 바꿨다. 케빈 아보시의 장미 사진 원본을 블록체인 기술로 암호화한 가상 화폐 ‘로즈 코인’을 발행하고 로즈 코인을 구매한 사람이 작품의 ‘소유권’을 인정받는 방식이다. 단, 디지털 사진 파일 원본은 작가가 갖는다. 저작권 배포권 등도 모두 작가가 갖는다.
황당한 제안에도 구매 의사를 밝힌 사람이 150명에 달했고, 작가는 ‘코인 지분’을 10%씩 쪼개 10명에게 팔았다. 복제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이 ‘오리지털리티’가 중요한 예술과 만나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앤디 티엔 대표는 “작품 제목에 ‘포에버’를 붙인 이유도 복제는 없다는 의미에서”라고 설명했다. 케빈은 “이미 첫 판매가의 3~4배에 코인을 되사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기술적으로 로즈 코인을 또 발행하는 게 가능하지만, 나는 예술가다. 재발행은 없다”고 덧붙였다.
마르셀 뒤샹(1887~1968)이 기성품 변기에 서명 하나로 예술의 개념을 바꿨을 때, 그는 이미 3차원 시간을 2차원 화폭에서 재현한 ‘세계적인’ 화가였다. 블록체인 기술을 미술품 ‘거래 방식’에 써먹은 이 봉이 김선달 같은 프로젝트도 케빈 아보시가 유명 사진 작가이기에 가능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 조니 뎁, 스칼릿 재핸슨 같은 할리우드 명사와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파키스탄 인권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등의 인물 사진으로 이미 명성을 쌓았다. 아일랜드 유기농 감자를 찍은 ‘Potato 345#’ 은 2015년 100만유로에 팔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인물 사진은 이 절반 가격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담회에서 그는 “어린 시절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보냈다. 학창시절 김밥을 도시락으로 싸오는 유일한 ‘비아시아인’이었다. 매년 김치를 담가 먹을 정도로 한국과 한국 문화에 애정을 갖고 있다”며 친근함을 표했다.
케빈 아보시가 현대미술의 개념을 재정립한 예술가인지, 봉이 김선달인지는 시간이 흐른 후 판명 나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 미술품의 ‘소유’와 ‘소유권’ 개념은 확실하게 분리한 것 같다. 간담회 후 이노베이션스 그룹은 ‘포에버 로즈’ 프린트물 30여개를 ‘기념품’으로 배포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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