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팀 스톤 건드리더라도
양측 합의하면 다시 제자리
감정 표현 자제하려 ‘돌부처’
경기 시작 전에 선물 교환도
몇 주 전만 해도 생소했던 ‘컬링’이라는 스포츠에 대한민국이 빠져들고 있다. 연일 승전보를 알리며 예선 1위로 평창동계올림픽 준결승에 진출한 여자 컬링 대표팀 덕분이다. 컬링만의 아기자기한 경기 매너도 보는 재미에 한몫하고 있다.
기권 문화는 대표적인 컬링의 ‘예의’다. 경기 도중 역전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는 팀은 상대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데, 상대를 인정하고 패배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보통 올림픽 스포츠에서 기권이란 ‘포기’를 뜻하지만, 컬링에서는 포기가 아닌 ‘인정(concede)’이라는 말을 쓴다. 승부 축이 확연히 기울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경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모습은 오히려 ‘비매너’로 여겨지기 때문에 컬링에서는 기권 장면이 자주 보인다. 우리나라 여자 대표팀은 9번 치른 예선 경기 중 4번(중국, 미국, OAR(러시아출신 올림픽 선수), 덴마크)이나 상대팀의 기권을 받아냈다.
심판보다 선수간 합의가 우선시되는 점도 컬링만의 매력이다. 경기 내내 심판 얼굴이 화면에 잡히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컬링에서는 심판 역할이 제한적이다. 선수들이 스위핑을 하다가 서 있던 스톤을 건드리더라도 양측 선수들끼리만 합의하면 돌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있다. 실수로 상대팀 스톤을 투구하더라도 괜찮다. 스톤이 정지한 뒤 같은 위치에 자신의 스톤을 가져다 놓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매 엔드 점수 계산을 할 때도 선수들끼리 어떤 팀이 몇 점을 따는지 합의한 뒤 심판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합의가 안 되는 경우엔 각 팀 서드(바이스 스킵)가 심판에게 거리 측정을 요구하고, 심판이 특수 장비를 이용해 티(중심) 지점으로부터 스톤까지의 거리를 잰다.
‘돌부처 안경 선배’라는 별명을 얻은 스킵(주장) 김은정(28)의 무표정에도 이유가 있다. 컬링 경기장에서는 감정 표현을 적게 하는 게 매너로 간주된다. 상대팀의 실수나 동료의 좋은 샷에 지나치게 기쁨을 표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며, 특히 상대 투구 시 집중력을 흩뜨리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 보통 동시에 여러 경기가 치러지기 때문에 선수와 스태프들은 경기장 내 이동할 일이 있더라도 다른 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뛰지 않고 빠른 속도로 걸어 다닌다.
경기장 밖 매너도 수준급이다. 컬링에는 경기를 시작하기 직전 주장들끼리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있다. 믹스더블 감독인 장반석 MBC 해설위원은 “주로 그 나라의 펜던트나 팀의 사진, 초콜릿 등 부담이 가지 않는 작은 선물이 주를 이룬다”면서 “준결승이나 결승처럼 같은 팀을 두 번째 만나는 경우엔 굳이 선물을 교환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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