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김여정’ 회동 불발은 방한 당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보인 강경한 태도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는 앞서 1월 북한 최고위급의 방한 가능성을 파악하고 북ㆍ미 회동 물밑 조율에 나섰고, 관련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김대중 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의 실무를 총괄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최한 리셉션장에서 느낀 북한 인사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당시 리셉션에는 북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참석했다. 이들과 같은 헤드테이블에 자리가 배치됐던 펜스 부통령은 행사에 지각한 데 이어 5분 만에 리셉션장을 떠나 추측이 무성했다. 펜스 부통령이 김 상임위원장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김 위원장과 안면이 있고, 나보다 17살이나 많은 분이라 곁에 가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하려고 아는 척을 했다”며 “(김 위원장이) 음식을 들다가 고개를 드는데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은 “그 테이블에 펜스는 없었고, (펜스 부통령의 태도에) 그러니까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 전 장관은 “김 부부장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의 이 같은 태도가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도 보고가 됐고, 북측이 미국과 회동을 취소한 이유로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이다. 정 전 장관은 “이런 (회동 2시간 전 취소) 결정은 위임에 의해 결정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펜스 부통령의 그 같은 행보를 두고는 “미국내 정치적인 요소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고 정 전 장관은 말했다. 정 전 장관은 “펜스 부통령은 어떤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은 강경파”라며 “미국의 지지층에 내가 이렇게 강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랬던 게 아닌가 한다”고 짐작했다.
미국이 뒤늦게 북ㆍ미 회동이 불발된 사실을 공개한 이유도 펜스 부통령의 정치적 입지 때문이라는 게 정 전 장관의 분석이다. 그는 “펜스 부통령이 북한 대표단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리셉션에 늦게 갔다가 5분 만에 나왔다는 내용 등으로 미국 내에서 여론이 안 좋았고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며 “일종의 면피용으로 ‘내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라는… (의도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 낀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와 관련해서도 조언했다. 북ㆍ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는 남북정상회담도 성사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의 23일 방한도 계기가 될 수 있다.
정 전 장관은 “외교부는 이방카가 다녀간 뒤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그러니까 6자회담 수석대표를 미국에 보낸다는데 그보다 높은 급이 가야 한다”며 “최소한 청와대 안보실장이 가서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직접 담판을 하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이 태도를 좀 바꿔달라, 그러면 우리가 북한을 다시 협상장으로 끌어내겠다’고 (협상해) 위임을 받아와야 되는데 그러려면 실무자가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 정 전 장관은 “문제는 (미국이) 펜스 부통령과 같은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려 줘야 한다”며 “그래야 북한도 비핵화에 대해서 전향적인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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