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금연구역 지정된 데다
건전한 스포츠로 인식 확산”
학교주변 설립불가 취소 판결
A씨는 지난해 6월 서울 서대문구에 당구장을 개업하기 위해 서울서부교육지원청을 찾았다.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교 주변 200m 안에서 당구장 영업을 하려면 별도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당구장이 들어설 건물 주변에 위치한 학교는 모두 4개. 그런데 이 가운데 한 중학교 교장이 “등ㆍ하교시에 건너는 횡단보도 바로 앞에 있어 호기심 많은 중학생들의 학습과 교육환경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서부교육지원청은 이를 근거로 “A씨가 개업하려는 당구장이 교육환경법 9조에서 정한 ‘학습과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고 인정하는 시설’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설립 불가’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A씨는 이 처분이 부당하다고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김국현)는 지난달 26일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당구는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18세 미만자 출입이 허용되는 등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 건전한 스포츠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당구장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만큼 흡연을 통한 비교육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줄어 들었다”고 설명했다.
당구장은 그 동안 대표적인 ‘유해시설’로 꼽혔다. 스포츠가 아닌 사행성 게임으로 보거나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법원에서도 유사 소송에 대해 “학생들이 내기 당구와 게임비 부담 등으로 돈을 뺏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나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2010년 5월)거나 “우리나라 현실상 당구장은 청소년기 학업에서 일탈하는 장소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2014년 2월)며 대부분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대학교에 당구학과가 생기는 등 당구를 스포츠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작년 초 당구장 설립 심의 대상에서 초등학교를 제외하는 등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다. 여기에 가장 큰 반대 이유였던 ‘담배’라는 걸림돌도 지난해 말 법 개정을 통해 제거됐다.
이런 까닭에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학교 주변에 당구장 설립을 제한하는 ‘족쇄’가 사실상 풀린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행정법원 관계자는 “당구장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후 처음으로 나온 판결인 데다 재판부가 이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다”며 “향후 제도를 시행하는 데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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