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강남권 “강남 집값 잡으려고
수만 가구 볼모 잡으려 해”
“안전 진단 끝난 재건축 단지는
반사효과로 값 치솟을 것” 분석
정부의 재건축 구조안전성 기준 강화 발표에 안전진단 신청을 준비 중이던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충격과 공황(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번 조치로 서울 강남3구의 재건축 단지 집값 오름세는 꺾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재산권 침해에 대한 반발과 기준 강화의 직접적 타격을 오히려 비(非)강남권 주민들이 더 받게 된다는 면에선 논란도 적잖다.
2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재건축 연한(준공 후 30년)이 지난 서울 아파트 단지 중 안전진단을 아직 받지 않은 곳은 총 10만3,822가구다. 이 가운데 비강남권인 양천구가 2만4,358가구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노원(8,761가구) 강동(8,458가구)구가 이었다. 송파구와 강남구는 각각 8,263가구와 7,069가구에 불과했다. 이번 규제로 피해를 볼 주민이 정부가 겨냥한 강남권보다 비강남권에 더 많다는 얘기다.
안전진단 기준 강화는 1970년대 말 지어진 10층 이상 중층 아파트 재건축 단지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올 공산도 높다. 79년 이후 건설된 서울 지역 아파트는 주차장과 소방시설 부족 등 열악한 주거 환경에도 불구하고 구조상 안전은 당시 강화된 건축 기준을 적용 받아 상대적으로 튼튼한 편이다. 바뀐 안전진단 기준을 통과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는 게 시장 전망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준공 20년 이상 된 서울의 재건축 예상 아파트 단지 중 79년 이전에 지어진 곳은 174곳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건축연한 30~40년 단지(379곳)나 20~30년 단지(1,249곳)다.
이미 양천구 등 비강남권 주민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양천연대 핵심관계자는 “불과 보름 전 국회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유보에 대해 ‘검토해볼 만하다’고 밝혔던 정부가 갑자기 등 뒤에서 칼을 꽂은 셈”이라며 “강남 집값을 잡으려고 비강남권 수만 가구를 볼모로 잡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국민청원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전진단 실시 여부를 놓고 준공연도가 비슷한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강북의 대표적 노후단지로 꼽히는 노원구 상계주공 아파트의 경우 총 3만여 가구가 거주하는 16개 단지 중 8단지만 2004년 안전진단을 통과해 철거가 진행 중이다.
강남3구 중에서는 송파구가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압구정 미성 1,2차 아파트 등 강남구의 대단위 재건축 단지는 안전진단을 실시했거나 진행 중인 반면 송파구의 풍납극동 아파트와 올림픽 선수촌ㆍ기자촌ㆍ훼밀리 아파트 등은 주민 의견 수렴 단계 등에 머무르고 있다. 손재영 건국대 교수는 “정부의 안전진단 강화 조치는 재건축을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 없다”며 “송파구 등 일부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은 잡히겠지만 이미 안전진단을 받은 재건축 아파트와 새 아파트 값은 오히려 반사효과로 값이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 교수는 “이번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는 휴대폰도 고장이 났을 때만 바꿀 수 있다고 정부가 강제하는 꼴”이라며 “물리적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거환경 등 아파트의 기능이 낙후돼 주민이 재건축을 원하는 곳은 사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