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빼고 모두 운 가족
어머니 “관중석 ‘괜찮아’에 눈물”
동생 위해 빙속 접은 오빠도 엉엉
#이상화 “경기 전부터 울컥”
“올림픽 후 어머니 모시고 캐나다로
첫 金 딴 밴쿠버 등 보여드릴 것
‘빙속 여제’ 이상화(29ㆍ스포츠토토)는 빙판 위에서 늘 ‘가족’을 품고 달린다.
그가 18일 강릉 오벌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값진 은메달을 따던 순간 관중석에는 아버지 이우근(61)씨, 어머니 김인순(57)씨, 친오빠 이상준씨(32) 등 온 가족이 총출동했다. 가족이 이상화의 올림픽 경기장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기 다음 날인 19일 이상화와 어머니 김인순씨를 강원 용평리조트 P&G 패밀리홈에서 만났다. 이상화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가족들이 와줘 행복할 따름”이라고 고마워했지만, 어머니는 “가슴을 졸이며 딸의 경기를 지켜보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상화 오빠는 1주일 전부터 안절부절 했다. 경기 전날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자 자정 넘어 런닝머신을 뛰며 마음을 추스리더라”고 전했다. 경기 중 동생 이름을 목 놓아 외치며 엉엉 울었던 오빠는 현재 체육교사로 어렸을 때 동생보다 먼저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남매를 모두 스케이트 선수로 키우기는 형편이 빠듯하다는 걸 알고 아들이 상화의 재능이 더 뛰어나 자신이 포기하겠다며 동생의 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딸의 은메달을 눈물로 맞았다. 레이스가 끝나고 은메달이 확정된 순간 모든 관중이 “이상화” “괜찮아”를 외치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어머니는 “우리 딸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걸 보니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이상화도 “실은 경기 전부터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평창’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울컥했다. 결승선 통과한 뒤 인사하고 완장을 벗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가족 중 아버지만 눈물을 참았다. 이상화는 “아빠는 절대 안 운다. 나머지 3명만 눈물이 많다”고 웃었다.
인터뷰실 밖에서 서성이던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한 정말 예쁜 딸”이라면서도 “상화가 은메달에 만족하지 않을 걸 나는 잘 안다”고 했다. 이상화도 “스타트가 상당히 빨라 기대를 했는데 막판 코너 실수가 아쉽다”면서도 “이미 끝난 일,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만족하지만 후회는 남는 오묘한 심정. 이상화는 “‘시원섭섭’이 아니라 ‘섭섭시원’“이라고 표현했다.
이상화는 금메달을 딴 고다이라 나오(32ㆍ일본)와 빙판 위에서 포옹하며 진한 감동을 안겼다. 그는 “그 친구는 밴쿠버와 소치 올림픽 때도 경기를 마치고 내가 나올 때까지 링크 밖에서 기다리곤 했다. 어제는 내 몸이 저절로 고다이라에게 가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이상화는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남은 올림픽을 즐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갑 친구 쇼트트랙 대표 곽윤기를 응원하러 가고 평소 관심 있었던 남녀 아이스하키 경기도 관전할 예정이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 여부에 대해 그는 “1,2년 정도 더 뛰는 게 맞다”고 현역 연장에 여지를 뒀다. 어머니 김씨는 “(운동을) 더 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지만 딸이 원한다면”이라고 의견을 존중했다.
이상화는 올림픽이 끝나면 어머니를 모시고 캐나다로 갈 계획이다. 그는 “첫 금메달(2010년)이 나온 밴쿠버 리치몬드 오벌과 초등학교 때부터 단골 해외 전훈지였던 캘거리를 엄마에게 보여드릴 것”이라고 했다. 반면 어머니는 딸 건강부터 챙기기 바쁘다. 김씨는 “얘가 이렇게 말라서 큰 일”이라며 인터뷰 내내 딸의 팔뚝을 애처로운 듯 어루만졌다.
이상화는 ‘피겨여왕’ 김연아(28)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은 사실도 전했다. 그는 “이제 편히 내려놓고 푹 쉬고 곧 만나자는 이야기를 연아와 주고받았다”며 미소 지었다.
이상화의 레이스엔 온 국민이 집중했다. 경기 시청률은 65%가 넘었고 격려 댓글이 쏟아졌다. ‘이상화가 은메달을 딴 게 아니라 은메달이 12년을 기다려 이상화를 차지한 것’이라는 재치 있는 우스갯소리에 이상화도 활짝 웃었다.
평창=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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