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안보 조사보고서를 통해 관세부과 대상 12개국을 선정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지 않자,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대미(對美) 철강 수출 1위 캐나다를 비롯해 주요 수출국인 일본과 독일, 멕시코 등은 제외한 반면 한국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대미 외교 실책론을 거론한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외교적 차원의 고려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선 경제적 차원에서 미국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올바른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철강업계가 미국 정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5년부터다. 19일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미국이 2015년부터 대 중국 무역규제를 본격화하면서, 그 해 중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18억6,400만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27.8% 급감했다. 반면 한국(22억1,200만달러, 6%), 터키(11억1,100만달러, 4.4%), 독일(12억1,200만달러, 7.1%), 프랑스(5억6,400만달러, 5.8%) 등 4개국 수출은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일본(15억4,700만달러)은 9.8%나 줄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산업경쟁력연구본부장은 “미국 정부가 중국산 철강의 우회 수출국으로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던 때였다”며 “중국 대미 철강 수출이 감소하자 유독 한국 수출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 정부는 한국을 주요 중국산 철강 우회 수출국으로 낙인찍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철강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기준 중국제 철강(총 6,907만톤) 중 한국(1,095만톤)이 수입 1위국이었고 그 뒤를 이어 베트남(744만톤), 필리핀(385만톤), 태국(289만톤), 인도네시아(262만톤) 순이다. 미국 철강업체들은 상무부의 철강 안보 조사과정에서 한국 업체가 저가 중국산 강판을 강관으로 가공해 미국에 덤핑 수출하고 있다고 강하게 문제제기 했다. 반면 일본은 해당 제품을 거의 수출하지 않는다. 정 본부장은 “한국이 제재대상에 포함된 건 중국을 제재하기 위해선 한국도 함께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한국의 수출 철강제품이 미국 기업 제품과 품질에서 대등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정부는 여기에 ▦미국의 철강 수출물량 대비 수입물량 ▦대미 철강 수출 증가율 ▦전통우방ㆍ거대경제권과의 마찰 회피 등 세 가지 조건을 함께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미 철강 수출액 기준 상위 20개 국가는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 한국 일본 독일 터키 대만 중국 이탈리아 베트남 인도 벨기에 태국 말레이시아 이집트 페루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쿠웨이트 순이다. 하지만 대미 철강 수출 1위 캐나다를 비롯 멕시코 등은 이번 관세부과 대상에서 제외된 반면 브라질은 포함됐다. 이들의 처지가 갈린 것은 미국이 상대국에 수출하는 물량 때문이다. 지난해 캐나다 대미 철강 수출액(52억100만달러)과 수입액(49억500만달러)은 큰 차이가 없고, 멕시코는 수출액(17억2,700만달러)보다 수입액(45억5,700만달러)이 3배 가량 많다. 반면 관세부과 대상에 포함된 브라질은 지난해 대미 철강 수출액이 28억4,000만달러로, 수입액(1억300만달러)보다 30배 가까이 많다.
상무부 제재 대상국 명단의 또 다른 특징은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는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독일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11억9,300만달러로 수입액(1억5,300만달러)보다 10배 가까이 많고, 이탈리아의 경우 대미 철강 수출 증가율이 26.9%에 달한다. 하지만 모두 대상에서 제외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EU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무역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거듭 경고해왔다”며 “미국이 주요 안보 동맹이며 세계 2위의 거대 경제권과 마찰은 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대미 철강 수출액 기준 상위 20개국 중 무역액이 미미한 국가(파키스탄, 페루 등)를 제외하고 수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 이상인 국가는 대부분 이번 관세부과 대상에 대부분 포함됐다. 인도(51.9%), 터키(18.5%), 이집트(1,629.8%), 태국(248.7%), 말레이시아(323%) 등이다. 반면 대만(20.1%)은 제외됐는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우방이라는 점이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연구위원은 “미국의 제재명단 대상국 면면을 분석해 보면, 중국을 주목표로 겨냥하면서 한국도 함께 휘말려 들어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며 “대미 수출 품목을 중국과 차별화하는 노력이 없으면, 앞으로도 한국은 미국의 무역규제 조치 대상에 계속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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