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성추행 혐의를 받아온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극단을 18년간 운영하며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형태의 일이었다”고 사실을 시인하며 “제 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포함해 그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연극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연극계를 떠날 의사도 밝혔다. 지난달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고발 이후 문화계에서도 미투(MeToo)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고은 시인의 과거 행동이 도마에 올랐고 연극계, 영화계에서는 성폭행 고발까지 나왔다.
문화계의 성폭력 고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불과 1년 반 전 SNS 등에 수개월 동안 문인들의 성폭력 실태를 고발한 글이 잇따랐고 그 중 일부 가해자는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당시 사태가 심상치 않자 진보적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는 “재발 방지책 강구”를 다짐하며 징계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했다. 그런데 왜 지금 다시 문단을 포함한 문화계의 성폭력이 불거졌는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서 검사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문화계 피해자들의 이번 고발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명망을 감안하면 1년 전의 사태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보여 준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주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런 일이 반복되는 줄 알면서도 항의만 하거나 못 본 척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권위와 위계에 눌려 8년 동안 서 검사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쉬쉬해 온 검찰보다 더 한 일들이 자유와 창의가 생명이라는 예술계에 일상화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더욱이 가해자의 사과ㆍ활동 중단 등으로 사태를 대강 수습하고 넘어가려는 문화계의 대응자세는 볼썽사납다. 작가회의는 회원 제명과 자격정지 등으로 고작 7명을 징계했을 뿐 법적 대응으로 이어 가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직접 법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지만, 심리적 부담과 가해자의 명예훼손 소송 등 현실적 걸림돌이 많다. 문화계 성폭력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최영미 시인 말대로 “문화부, 여성단체, 법조계가 참여하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조사 및 재발방지위원회” 같은 조직이라도 만들어 조사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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