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간 중 EU시민 차별 우려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2단계 협상이 예상대로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며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영국의 이혼합의금(EU 재정분담금) 지급, 아일랜드 국경 처리 문제 등 주요 쟁점에서 진통을 겪다가 지난해 말 가까스로 타결을 봤던 ‘1단계 협상’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양측은 올해부터 시작된 ‘2단계 협상’에서 브렉시트가 시작되는 2019년 3월30일 이후 약 2년 간의 전환기간 중 EU 시민들의 ‘시민권’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기 베르호프스타트 유럽의회 브렉시트 협상대표는 이날 BBC방송 ‘앤드류 마 쇼’에 출연해 “영국은 브렉시트 전환기 중 자국에 입국한 EU 시민들에게 벌칙을 부과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이달 초 “2019년 3월 이후 영국에 오는 EU 시민들은 그 이전에 왔던 사람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밝힌 데 대해 다시 한번 공개반박에 나선 셈이다.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충격파를 줄이기 위해 2020년 12월 말이나 2021년 3월쯤까지는 영국이 EU 규정을 준수하는 ‘과도기’를 두기로 합의한 상태다.
베르호프스타트 대표는 메이 총리의 제안을 “별로 진지하지 않다”고 꼬집은 뒤, “유럽의회에선 시민권 축소라는 점에 매우 우려하면서 ‘관료주의적 악몽’이라고 부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전환기 중) 금융서비스와 상품, 산업 관련 규칙은 변하지 않는데 시민들의 상황만 바뀌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에 대해선 논의조차 하고 싶지 않다”고 쐐기를 박았다. 시민권을 협상 대상으로 삼진 않겠다고 못 박은 것이다.
하지만 메이 총리도 순순히 물러설 수 없는 상태여서 협상은 교착 국면에 빠질 전망이다. 지난해 9월 “전환기 중에는 EU 시민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던 그가 말을 뒤집은 배경에는 집권 보수당 내 ‘하드 브렉시트’(EU와의 전면적인 관계 단절) 세력의 격렬한 반발이 있다. 오락가락 행보로 당내 안팎에서 입지가 좁아진 메이 총리로선 EU에 강하게 맞서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돌파구가 없다는 얘기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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