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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의 탄식과 환호

입력
2018.02.19 15:5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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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중순 국무회의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당사자인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국제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직전에 열린 한미정상회담과 G20 정상회의에서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우리 정부의 북핵 해법을 설명하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을 끌어냈지만 내심 한계를 더 크게 체감했다는 탄식이다. 문 대통령의 이 탄식은 국익 외교를 강화하자는 본래 의도와 달리 정부의 무기력을 공격하는 야당의 무기로 즐겨 인용됐다.

▦ 당시 문 대통령은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평화 5대 원칙과 이산가족 상봉 및 적대행위 금지 등 4대 대북 제안을 골자로 하는 한반도 평화구상, 이른바 '베를린 선언'을 야심 차게 준비했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 독립기념일을 기해 ICBM급인 화성-14호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며 재를 뿌리는 바람에 대화와 평화 얘기는 압박과 제재 주장에 묻혀 버렸다. 북한마저 '푼수없이 노는, 잠꼬대 같은 궤변'이라고 문 대통령 구상을 일축했다. 이런 북한을 팔에 안고 미국 등 국제사회를 설득하려니 탄식과 한숨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 북한이 4대 제안 중 하나인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수용하며 선수단ㆍ예술단ㆍ응원단은 물론 김여정이 포함된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고 남북정상회담까지 제의한 상황은 말 그대로 파격적이다. 탄식을 거듭하던 문 대통령이 "바람 앞의 촛불 지키듯 대화를 지키고 키워달라"고 호소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설 연휴에도 평창을 찾아 남북 선수들의 선전에 환호하며 평화 올림픽의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자존심을 앞세운 북미 간 말싸움과 신경전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환호는 언제든 탄식으로 바뀔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우물에서 숭늉 찾기'라는 속담으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과잉 기대를 경계한 이유다.

▦ 북한 탄식을 잠시 접은 문 대통령은 최근 울산과학기술원(UNIST) 졸업식에서 또 다른 탄식을 토해냈다. "중국에선 알리바바 등 세계적 기업들이 나오고 해마다 300만개 정도의 청년 창업이 탄생하는데 우리는 네이버나 카카오 이후 이렇다 할 성공 기업이 없고 모험 창업에 나서는 청년들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안보적 생존의 한 고비를 넘으니 경제적 생존 문제가 눈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어쩌면 대통령의 이 탄식이 더 시급한 문제일지 모른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l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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