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영의 영어교재 ‘아학편’
복간되며 인기… 재판 찍기로
벼 화(禾)는 Rice, Rice는 ‘으라이쓰’다. 인군 군(君)은 Ruler, Ruler는 ‘으룰러’다. ‘ㄹ’ 발음 앞에 혀를 말면서 한 박자 쉬고 들어가는 느낌을 ‘으’로 표기해뒀다. R 같은 L 발음도 마찬가지다. 다만 R보다 혀를 덜 굴리는 L 발음이 조금 더 강하다. 호수 호(湖)는 Lake, Lake는 ‘을레익크’다. 마찬가지로 폭 복(幅ㆍ지금은 ‘폭’이지만 당시 음가로는 ‘복’)은 Latitude, Latitude는 ‘을나티튜드’라 발음한다.
출판사 베리북이 최근 복간해 내놓은 110년 전 조선시대 영어교재 아학편(兒學編)에 담긴 내용이다.
아학편은 원래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 유배시절 아이들 한자 공부용으로 편집해 만든 책이다. 중국식 천자문 대신 다산이 별도로 2,000자를 골라 우리 식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 같은 유학자 특유의 추상적인 표현으로 시작하지 않고, 천지부모(天地父母) 군신부부(君臣夫婦)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표현으로 이뤄져 있다.
시간이 지나 1882년 조선과 미국은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맺었다. 이듬해인 1883년에는 미국 문물을 배우기 위해 보빙사가 두 달 여행으로 미국 뉴욕을 다녀왔다. 이후 미국 문물이 유입되면서 영어 교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때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 선생이 ‘아학편’에 주목했다. 아학편의 한자에다 영어, 일어, 중국어 표기를 함께 병기한 책을 만들었다. 1908년 출간된 ‘영어교재 아학편’이다. 지석영은 서문에다 “지금 해문(海門)이 크게 열려 서구(西歐)와 아세아(亞細亞)가 교역(交易)하여 우리의 적고 비루함으로 저들의 우수하고 뛰어난 점을 취하여 열강(列强)과 겨누려면 어학(語學)이 필요하다"고 적어뒀다.
아학편 복간본의 반응은 의외로 좋다. 초판 3,000부에 이어 재판을 찍을 예정이다. 베리북 관계자는 “110년 전에도 지금처럼 이렇게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구나 싶기도 하고, 원음을 최대한 살려서 표기한 내용이 재미있기도 해서 독자들 반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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