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레톤 마지막 4차 주행이 한창이었던 16일 평창 올림픽슬라이딩센터. ‘현재순위’ 1~3위 선수가 대기하고 있던 대기석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한 명씩 짐을 싸느라 바빠졌다. 성적 좋은 선수일수록 뒤에 출발하는 스켈레톤 4차주행 특성상 뒤 선수가 앞 선수의 기록을 뛰어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열 번 가까이 1위 자리가 바뀌고서야 마지막 순서로 윤성빈(24)이 등장했다. 대기석에 있던 당시 3위 선수는 윤성빈이 50초02로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묵묵히 짐을 쌌고,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금메달이 결정되는 극적인 순간이 경기 마지막에 벌어지기 위해서는 ‘잘하는’ 선수일수록 뒤에 배치하는 게 효과적이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예선 1위였던 클로이 김(18ㆍ미국)이 본선에서 마지막 순서인 12번째로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모든 종목이 이런 드라마를 따르는 건 아니다. 경기장을 차례대로 사용해야 할 경우 출발 순서는 성적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방식은 추첨이다. 썰매 종목의 경우 뒤 순서일수록 트랙 얼음 상태가 나빠져 불리하기 때문에, 1차 주행에서는 모두에게 공평한 추첨 방식을 이용한다. 18일 오후 1차 주행을 치른 봅슬레이 남자 2인승 원윤종(33)-서영우(27) 조는 추첨 불운으로 마지막인 30번째로 얼음 위를 달렸다. 피겨스케이팅은 국제빙상연맹(ISU) 세계랭킹이나 쇼트프로그램 성적이 좋을수록 뒤 그룹에 배정되지만, 그룹 내에서는 추첨에 따라 순서가 정해진다. 각 그룹 경기 전에 정빙 및 준비운동 시간이 주어지는데, 선수들은 몸이 풀린 상태에서 깨끗한 얼음을 이용할 수 있는 그룹 내 앞 순번을 선호하는 편이다.
잘 하는 선수에게 선택권을 주기도 한다. 알파인 스키가 대표적이다. 스피드 계열인 활강과 슈퍼대회전의 경우 올림픽 직전까지 쌓인 해당 종목 국제스키연맹(FIS) 랭킹 1위부터 10위 선수에게 1~20 사이 홀수 번호를 먼저 고르게 한다. 박재혁 평창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위원장은 “앞 순서일수록 눈이 적절하게 덮인 좋은 코스에서 탈 수 있어 이득이지만, 너무 앞 번호는 심적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에 선수들이 꺼린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평행대회전 FIS 랭킹 1위 라라 구트(27ㆍ스위스)는 5번째 순서를, 2위 선수는 7번째 순서를 골랐다.
못하는 선수일수록 ‘패널티’를 주는 종목도 많다. 노르딕 복합은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가 합쳐진 만큼, 스키점프 성적에 따라 크로스컨트리 출발 순서가 달라진다. 스키점프 점수가 낮은 선수는 최고 점수와의 1점 차이당 개인경기는 4초씩, 단체경기는 1.33초씩 늦게 출발한다. 바이애슬론 추적은 전에 치러진 스프린트전 1위부터 출발하는데, 뒤 주자들은 앞선 주자와의 기록 차이만큼 늦게 출발하기 때문에 상당히 불리하다. 10일 여자 스프린트 금메달을 딴 로라 달마이어(25ㆍ독일)는 추적에서 첫 번째 순서로 출발해 금메달 하나를 더 목에 거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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