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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은 잊었다… 강동원, 끊임없는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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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은 잊었다… 강동원, 끊임없는 변신

입력
2018.02.18 13:4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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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제작 물꼬 틔우는 등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

‘골든 슬럼버’선 누명 쓴 택배기사 역

다양한 장르ㆍ신인 감독과도 활동

“외부요인 신경 안 쓰는 드문 배우”

직접 영화 시나리오 구상하기도

배우 강동원은 영화 '1987'이 한 달여가 지났지만 "아직 이한열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강동원은 영화 '1987'이 한 달여가 지났지만 "아직 이한열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7일 서울 용산구의 한 멀티플렉스극장. 특별한 손님이 영화 ‘골든 슬럼버’ 언론시사회를 찾았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씨다. 배씨는 광주에서 상경했다. 강동원이 나오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영화 ‘1987’로 인연을 맺었다. 강동원이 이한열 역을 맡으면서부터였다. 이한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강동원은 지난해 4월 배씨와 이한열의 묘를 참배한 뒤 틈틈이 배씨를 찾아왔다. 배씨는 강동원을 “아기”라고 부르며 허물없이 대했다. 지난 겨울엔 직접 기른 배추로 김치를 담가 집으로 찾아온 강동원의 손에 들려 보냈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인 배은심(왼쪽)씨와 배우 강동원이 지난해 4월 이한열 묘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이한열 열사 어머니인 배은심(왼쪽)씨와 배우 강동원이 지난해 4월 이한열 묘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이한열 열사 어머니와 재회… ‘1987’ 시사회서 운 이유

하지만 배씨는 먼저 보낸 아들을 연기한 강동원의 ‘1987’을 보지 못했다. 배씨는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상영회에 참석하려 했으나 상영관에 끝내 발을 들이지 못했다. 30년 전 끔찍했던 기억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고, 지인들 앞에서 또 눈물을 보여주기도 싫었다. 배씨는 ‘1987’ 대신 ‘골든 슬럼버’ 시사회장을 찾아 강동원의 연기를 지켜봤다. 영화가 끝난 뒤엔 강동원을 만나 격려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동원은 “배 여사님이 제 어머니와 비슷하더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옳은 일을 할 땐 해라, 다만 뒤에서 해라’란 얘길 하셨거든요. 그런데 이한열 열사 관련 책을 보니 배 여사님도 똑같은 말을 하셨더라고요.”

강동원은 문 대통령과 함께한 ‘1987’ 상영회에서 눈물을 흘렸다. ‘1987’의 산증인들과 영화를 함께 봐 그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강동원은 “고문 장면에선 관객 사이 신음이 흘러나왔다”며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영화 '1987' 400만 관객 돌파를 기념하는 강동원(위 사진 맨 왼쪽)과 신작 '골든 슬럼버'에서 그의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87' 400만 관객 돌파를 기념하는 강동원(위 사진 맨 왼쪽)과 신작 '골든 슬럼버'에서 그의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권력에 짓밟힌 소시민으로

186㎝의 훤칠한 키에 소년 같은 얼굴. 모델로 데뷔해 ‘꽃미남’으로 소비됐던 강동원이지만 최근 작품에서 청춘스타 판타지는 없다. ‘1987’에서 최루탄에 맞고 쓰러졌고, ‘골든 슬럼버’에서는 쓰레기 처리 심부름까지 시키는 고객의 ‘갑질’을 견디는 택배기사 건우로 분했다.

출연작이 품은 사회적 메시지도 남다르다. 두 영화엔 무소불위의 권력에 짓밟힌 이들의 삶이 아찔하게 펼쳐진다. ‘골든 슬럼버’에서 건우는 국가정보원(국정원)에 의해 대통령 후보 암살자란 누명을 쓴 뒤 존재를 철저히 부정 당한다. ‘늑대의 유혹’(2004) 같은 청춘 멜로물과 ‘전우치’(2009) 같이 상상의 공간에서 활약했던 배우의 이례적인 행보다. 강동원은 “권력에 부딪혀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동원은 “사회적 문제엔 늘 관심이 있었다.” 12년의 세월을 거슬러 2006년. 데뷔 3년째였던 강동원은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서울 대학로에 나가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시위를 끝까지 마쳤다. 당시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영화인대책위원회 홍보팀장을 맡았던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스크린 쿼터 문제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고 뜻을 모아야 하느냐’ 등의 의견을 진지하게 묻던 강동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영화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1987’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 ‘판’을 키운 이도 강동원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 제작이 추진된 ‘1987’은 투자배급사를 찾지 못해 저예산 영화로 제작될 뻔했으나, 강동원 합류 후 제작에 힘이 실렸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둔 아버지부터 사제, 탈북 첩보요원, 초능력자까지.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검은 사제들' '의형제' '초능력자' 등에서 강동원은 다양한 옷을 입었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둔 아버지부터 사제, 탈북 첩보요원, 초능력자까지.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검은 사제들' '의형제' '초능력자' 등에서 강동원은 다양한 옷을 입었다.

작품 기획하는 탐험가

강동원은 ‘탐험형 배우’다. 2003년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로 데뷔해 2004년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늑대의 유혹’ 이후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화려한 이미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꽃길’ 대신 택한 건 도전이었다. 강동원은 사형수(‘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로, 탈북 첩보요원(‘의형제’)으로, 불치병이 걸린 아이를 살뜰하게 챙기는 아버지(‘두근두근 내 인생’)로 다양하게 살았다. 인기를 얻은 뒤엔 신인 감독과의 작업(‘초능력자’ ‘검사외전’ ‘검은 사제들’)을 즐겼다. 기성 감독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신인 창작자와 함께 새 길을 걸었다.

단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강동원은 ‘그녀를 믿지 마세요’ 등의 흥행으로 몸값이 올랐을 때 ‘그놈 목소리’(2007)에서 모자를 눌러쓴 모습만 짧게 비추었다. ‘전우치’ 등 강동원이 출연한 영화 7편을 제작한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는 “강동원은 유괴범 목소리로 출연한 ‘그놈 목소리’ 뿐 아니라 B급 감성이 진한 ‘초능력자’ 선택도 망설이지 않았다”며 “외부 요인에 신경 쓰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에 집중하는 드문 배우”라고 봤다.

강동원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역과 이야기를 스스로 찾기도 한다. 일본 동명 소설이 원작인 ‘골든 슬럼버’도 강동원이 2010년 이 대표에 먼저 영화 제작 제의를 해 8년 만에 빛을 봤다.

김지운 감독의 ‘인랑’을 촬영 중인 강동원은 내달부터 할리우드 영화 ‘쓰나미 LA’ 촬영에 들어간다. 수족관에서 일하는 서퍼로 나온다. 데뷔 15년 만의 미국 진출이다. 강동원은 직접 구상한 영화 시나리오를 품에 안고 새 꿈을 꾸고 있다. “휴먼 장르예요. 준비하고 있는 기획이 현실로 이뤄질진 모르겠지만요, 하하하.”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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