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트럼프 패거리 김칫국에 호들갑
우리 대표단 마주 볼 엄두 못내”
자신감일까, 허세일까.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목마르지 않다”고 여유를 부렸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곤경에 빠진 미국의 가련한 몰골만 드러낸 꼴불견 행보’ 제하 개인 필명 논평에서 “명백히 말해두건대 할 일을 다 해놓고 가질 것을 다 가진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에 목말라 하지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바빠날(급해질)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대표단을 이끈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행보를 비난하면서다.
신문은 “겨울철 올림픽경기대회 기간 여론의 주요한 관심사로 된 것은 이번 기회에 조미(북미) 사이의 접촉이나 회담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며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트럼프 패거리들이 그에 대해 호들갑을 떨어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이 제재 압박으로 나오든, 군사적 선택을 하든, 모략 소동에 열을 올리든 우리는 그 모든 것에 대처할 다양한 방안들이 다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펜스 부통령이 이번 방한 기간 동안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하고 탈북민을 면담한 일 등을 거론하며 “미국은 펜스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주먹깡패 질을 해댄 것이 어떤 우환거리가 되었는지 똑똑히 맛보게 될 것”이라고도 위협했다.
신문은 “(펜스 부통령이) 우리 고위급 대표단이 가까이 다가올 때는 마주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며 “어떻게 감히 정의감과 자신심에 넘쳐있는 우리 대표단의 밝은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위임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북한의 이런 느긋한 자세는 최근 외신들의 평창올림픽 계기 북미 외교전 승패 평가에 고무된 결과로 보인다. 국제 여론이 자신들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를 계기가 마련됐다고 북한이 판단했을 수 있다. 올림픽 개회 직후 대체로 미 언론들은 평창 외교 대결에서 북한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때까지 압박을 강화한다는 해묵은 메시지를 갖고 온 펜스 부통령과 달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특사인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상을 뛰어넘는 방북 초청과 화해의 메시지를 내놓았다고 평했고, CNN도 “김정은의 여동생이 미소로 동계올림픽 쇼를 훔쳤다”고 했다. 보수 성향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마저 ‘감옥국가’인 북한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맞먹는 이미지 변신 효과를 거뒀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짐짓 다급하지 않은 척하기 위해서라는 추측도 여전히 가능하다. 북한이 대화 공세에 나선 게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를 못 견뎌서라는 분석에 근거해서다.
마지못해 북미 대화에 나서는 모양새가 연출되도록 더 중재에 힘써달라는 대남 메시지일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청와대에서 만나 ‘조기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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