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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의원의 설] ‘양성평등 명절’… “투쟁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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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의원의 설] ‘양성평등 명절’… “투쟁의 산물”

입력
2018.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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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의 '며느리 의원의 설' 설문조사에 응한 여성 의원 가운데 '명절에 배우자와 평등하게 가사 분담을 한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의원들이 "투쟁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차례 지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어린이들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의 '며느리 의원의 설' 설문조사에 응한 여성 의원 가운데 '명절에 배우자와 평등하게 가사 분담을 한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의원들이 "투쟁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차례 지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어린이들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명절이 되면 여성가족부가 관행적으로 벌이는 캠페인이 있다. ‘양성평등한 명절 보내기’다. 연휴 온라인 커뮤니티엔 전근대적인 가부장문화에 따른 성 차별을 집대성한 사례가 넘쳐난다. 오죽하면 ‘한국 사회의 양성평등 수준은 명절에 결판 난다’는 말이 있을까.

한국일보가 ‘며느리 의원의 설’ 설문조사를 하면서도 이 같은 사회의 실태가 고스란히 반영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문항이 있었는데, 바로 명절 가사 분담 비율이었다. 설문조사에 응한 기혼 여성 의원 가운데 ‘명절 음식 준비를 할 때 배우자와 분담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공평하게 한다’는 답변이 35.1%(13명)로 집계됐다. ‘배우자가 더 많이 한다’는 답변도 10.8%(4명)나 됐다. 두 수치를 합하면 10명 중 4, 5명 꼴이다. 물론 ‘본인이 더 많이’(29.7%ㆍ11명), ‘전적으로 본인이’(18.9%ㆍ7명) 한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절반에 가까운 의원들은 적어도 가사 분담만큼은 진보적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 신동준 기자
그래픽 신동준 기자

‘평등한 명절’ 뒤엔 ‘개화’된 시어머니가…

명절 가사 부담이 적다고 답한 의원들의 비결은 대다수가 ‘진보적인 시어머니’ 덕분이었다. “가사는 원래 남자가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어머니를 둔 행복한 며느리 의원도 있었다. 초선인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시어머니가 남자들이 집안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신다”며 “덕분에 남편이 평소 가사는 물론, 명절에도 일을 많이 해 명절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차례상차림을 대행업체에 맡기기로 결단한 시어머니도 있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며느리들이 불편해할까봐 시어머니가 솔선수범 하시는 편”이라며 “그마저도 부담을 줄이려고 작년부턴 차례 음식을 외부에서 주문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재선인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시어머니가 ‘의원 며느리’를 배려해 국회 의사일정 때문에 제사에 가지 못해도 꾸지람 한 번 안 하신다”며 “결혼 후 일을 병행할 수 있었던 것도 집 근처로 이사해 아이들을 돌봐주신 시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며느리의 굴레’를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시어머니도 있었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시어머니가 당신이 겪으신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서 명절에도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제사도 나 살아있을 때만 하자’고 하신다”고 말했다.

“처음엔 나도 힘들었다”…투쟁의 성과

‘주어진 행복’만 있는 건 아니다. 결혼 생활 내내 투쟁의 산물로 얻은 쓴 열매인 경우도 있다. 집안 내 명절 문화 개혁의 배경엔 며느리 의원들의 집요한 투쟁도 있었다. 맏며느리인데도 ‘명절에 공평하게 가사 분담을 한다’고 답한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처음엔 나도 힘들었다”며 “22년 투쟁의 결과”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를 두루 거친 여성운동가 출신이다. 그러나 시가의 분위기는 그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남성 중심 문화였다.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여자라는 이유로 절도 못하게 하면서 상차림은 정 의원과 손아래 동서가 도맡아 하는 게 대표적이었다. 정 의원의 선택은 정면돌파. “시아버지에게 여성운동 하는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껴 제사에 오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정 의원은 “그치지 않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설득했더니 결혼 8년 차쯤엔 내 의견 대부분이 수용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의원은 “결혼 초에는 부당하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아 순응했지만, 내 일과 병행하기에 벅찬 수준이 돼 시어머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명절에 장만하는 음식 양을 줄이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다”며 “처음엔 다소 못마땅해 하시던 시어머니도 오히려 명절 음식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가족들이 더 즐거워하는 분위기가 되자 생각을 바꾸시더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한 발 더 나아가 시동생들에게도 당당하게 설거지를 시킨다”며 웃었다.

‘며느리 의원의 설’ 설문조사는 한국일보가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20대 국회 여성 의원 50명 중 배우자와 사별ㆍ이혼했거나 비혼 상태인 의원(10명)을 제외한 4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가운데 연락이 닿지 않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제외한 39명의 의원이 응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이지영ㆍ홍인석 인턴기자

그래픽 신동준 기자
그래픽 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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