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표할 때보다 쉽다.” “야당은 어렵지 않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7월 당 대표 취임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한 얘기다. 홍 대표가 이런 언급을 한 데는 2011년 한나라당(현 한국당) 대표에 취임했다가 6개월도 안돼 낙마한 아픈 기억이 작용했다. 당시 홍 대표는 서울시장 자리를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연결시켰던 오세훈 시장의 낙마와 곧장 이어진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 디도스 사건 등의 책임론에 떠밀려 어렵사리 잡은 당권을 내려 놓아야만 했다. 정치 현실상 야당 대표가 쉬운 길을 간다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지만, 홍 대표의 과거를 생각하면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7개월여 당을 이끌어 온 홍 대표에게 실제 야당 대표직이 어렵지 않았을까. 현재 당이 처한 상황에 미뤄보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장 홍 대표가 광역자치단체장 6석 이상 확보로 승부를 걸겠다고 공언한 지방선거 인재영입부터 난항이다. 지방선거 승패의 핵심 잣대라 할 수 있는 서울시장 후보로 염두에 뒀던 홍정욱 전 의원이 일찌감치 출마 거부 의사를 공식화 했고, 수성이 필요한 부산시장과 경남지사 후보군으로 점 찍었던 장제국 동서대 총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도 역시 출마를 고사했다. 오죽하면 홍 대표가 과거 자신의 당 대표직 조기 낙마의 원인을 제공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향해 “당의 제일 중요한 자산”이라며 구애에 나섰을까.
지지층 복원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홍 대표는 취임 100일에 즈음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방선거까지 25%정도까지 지지율을 회복하면 해볼 만하다”고 했고, 최근에도 내부 조사 등을 근거로 연일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아직 이에 못 미치는 게 엄연한 한국당의 현실이다. 중도보수를 겨냥한 바른미래당의 창당으로 원치 않는 경쟁 상황에 몰리는 것도 지지층 회복에 적잖은 부담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15일 “바른미래당의 파급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다만 문재인 정부를 향한 비판에 공력을 집중해도 부족한 판에 체급과 상관 없이 경쟁 상대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언론과의 관계도 순탄치 않다. 지난달 29일에는 밀양 화재 참사 정쟁화 기사와 관련해 “이제 조선일보조차도 밀양사고를 양비론 정쟁으로 몰고 야당을 비난하네요. 곤란하면 아예 야당 기사를 쓰지나 말든지”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데 이어, 급기야 지난 2일에는 ‘가짜보도’를 이유로 MBN을 상대로 취재를 거부하면서 5억원의 명예훼손 소송까지 걸었다.
최근에는 홍 대표 리더십을 비판하는 당내 중진의원들의 반발도 잇따르고 있다. 12명의 중진의원들이 한동안 멈춰서 있는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 개최를 요구한 데 이어 이중 일부는 “홍 대표 본인의 독선적이고 비화합적인 비호감 정치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며 “당 대표 1인의 사당적 욕심 때문에 대한민국 유일 보수적통 정당이 이렇게 지리멸렬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는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움직임은 아직 한국당의 내부 전열정비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사실상 증명하는 것으로, 단일대오로 힘을 합쳐 여당과 각을 세워야 하는 홍 대표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홍 대표를 둘러싼 이런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그가 언급한 대로 쉬운 야당 대표의 길을 갈 수 있는지 여부는 6월 지방선거와 재보선 결과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 관계자는 “정치는 결국 선거 결과로 말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6월 선거 결과에 따라 홍 대표의 앞날도 바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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