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인천지방법원 417호. 민사합의 11부(부장 변성환)는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이유 있으므로 인용한다”며 원고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한국지엠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로 원고들은 3년 넘게 진행됐던 소송 끝에 정규직 직원 채용에 한발 다가서게 됐다. 그러나 선고 불과 몇 시간 전, 한국지엠의 군산 공장이 폐쇄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승소 판결을 받은 근로자들은 마냥 웃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인천지법은 한국지엠 부평ㆍ군산공장 사내협력업체 근로자 45명이 2015년 한국지엠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한국지엠의 불법 파견 행위를 인정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인천지법은 명목상으로는 사내협력업체가 지휘ㆍ감독하는 도급 계약을 맺었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지엠이 근로자들에게 지휘ㆍ명령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제조업은 파견 허용업종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파견 형태의 근로가 인정되면 불법이 된다.
이에 따라 법원은 45명의 원고 중 2007년 개정 전 파견법이 적용되는 18명은 곧바로 정규직 지위가 인정되고, 개정 파견법이 적용되는 나머지 원고는 한국지엠이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재판 과정에서 한국지엠 측은 직접 고용한 근로자들과 사내협력업체의 업무를 분리하고 해당 근로자에 대한 지휘ㆍ감독도 중단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국지엠 소속 근로자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를 컨베이어벨트 공정 전ㆍ후로 배치해 개별 공정으로 볼 수 없는 점 ▦한국지엠이 계약서와 달리 사내협력업체 직원의 업무를 수시로 변동시키고 같은 공정에 양측 근로자를 번갈아 투입하기도 한 점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인적사항을 한국지엠 인사시스템에 입력하고 근태관리를 해 왔던 점 등을 한국지엠에 불리한 증거로 판단했다.
인천지법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은 앞서 한국지엠 대표이사가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2013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을 받은 판결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됐다. 형사 소송의 판결에 기초해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먼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이어 부평ㆍ군산 공장의 근로자도 소송 대열에 합류, 인천지법에서 재판이 시작된 지 3년 여가 지나서야 1심 선고가 나온 것이다. 창원 공장 근로자들의 소송은 2016년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됐다.
그러나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텨왔던 부평ㆍ군산 공장 근로자들의 앞날은 13일 전해진 군산 공장 폐쇄 소식으로 더욱 가늠하기가 어렵게 됐다. 군산 공장의 사내협력업체에서 일했던 원고는 총 8명. 일단 군산 공장이 폐쇄되더라도 다른 공장이 직접 고용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지엠이 공장 추가 폐쇄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군산 공장뿐만 아니라 부평 공장 원고들의 정규직 채용도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부평ㆍ군산 공장 근로자들을 변호한 김유정 변호사는 “한국지엠 자체가 사라져 버리면 법원 판결에 따른 직접 고용 의무 주체가 사라지는 셈”이라며 “이미 결정을 내렸으면서 하필 선고 당일 폐쇄 발표를 한 것은 불법 파견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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