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최근 3년간 현황 분석
재취업 신청한 공무원 83%가
공공기관ㆍ로펌 등 자리 옮겨
면세점협회 취업심사 신청한
관세청 퇴직자 28명 모두 통과
*공직자윤리위 심사 유명무실
취업승인 근거ㆍ심사자 등 비공개
고무줄 잣대로 형평성 논란 일어
“회의록 공개 등 절차 투명 급선무”
#지난 1일 국군 기무사령부 요원들이 육군 예비역 소장 A씨의 자택과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육군본부에서 개혁과제를 주도하다가 지난해 말 전역한 A씨는 마침 이날 정부의 취업심사를 무사히 통과해 국내 굴지의 방산업체 임원으로 재취업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A씨의 집에서 2급 기밀 20여건이 발견되면서 A씨는 바로 군 검찰에 구속됐다. 정부의 공직자 취업심사가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2004년 설립된 한국면세점협회는 인천국제공항 물류창고와 물품 인도장을 운영하면서 면세점 업계를 대표해 정부에 제도개선을 제안하는 단체다. 2016년 공개모집으로 바뀌기 전까지 협회 이사장 자리에 면세점 정책을 결정하는 관세청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대표적인 관피아 적폐 사례로 꼽혔다. 세월호 참사 직후 관피아 논란이 잠잠해지는가 싶었지만 관세청의 낙하산 관행은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최근 3년간 면세점협회 취업현황을 살펴봤더니, 정부에 심사를 신청한 관세청 퇴직 공무원 28명 가운데 불가 판정을 받은 경우는 단 한차례도 없었다.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와 정부ㆍ기업 간 유착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무연관성이 의심되더라도 무난히 취업에 성공하는가 하면, 유사한 사례에 대해 상반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어 주먹구구 식 심사라는 지적이 무성하다.
14일 본보가 2015년부터 최근까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심사대상 2,023명 가운데 1,675명(82.8%)이 기업, 공공기관, 로펌 등으로 무사히 자리를 옮겼다. 취업제한에 걸린 인원은 348명(17.2%)에 불과했다. 재취업에 성공한 공직자는 경찰청이 481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방부(229명), 관세청(65명), 금융감독원(42명) 순이었다. 인허가, 구매, 사정기관 출신이 재취업 시장에서 우대받는 셈이다. 청와대도 45명 가운데 40명(88%)이 취업가능 판정을 받아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전 5년간 근무했던 부서와 취업예정기관의 업무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지를 심사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무적으로 재산을 등록해야 하는 4급 이상 공무원과 경사 이상 경찰, 대령 이상 군인 등이 해당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민관유착 등 문제가 드러나면서 2015년 3월에는 심사 기준이 크게 강화됐다. 취업제한 기간이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늘고, 해당 부처의 산하 협회와 조합 취업이 엄격히 제한됐다. 이에 따라 재취업 심사에서 탈락한 공무원의 비율은 2014년 19.6%에서 2015년 20.8%로 높아졌지만, 이듬해 다시 17.9%로 떨어져 반짝 효과에 그쳤다. 올해 탈락률은 11.8%에 불과했다.
재취업 과정에서 업무연관성이 의심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군 출신 254명 가운데 35명(13.7%)이 국내 대형 방산업체 재취업 관문을 통과했고 금융위원회 출신들은 주로 전국은행연합회를 비롯한 금융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유명 로펌들은 국세청, 국가인권위원회, 청와대 등 다양한 부처의 공직자들을 대거 흡수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직자윤리위는 취업심사 내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취업을 승인한 근거가 무엇인지, 누가 심사하는지 알 수가 없고 승인내역에도 재취업 대상자의 최종 직급과 회사명만 적시돼 있어 외부에서는 업무연관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불가능한 구조다. 심지어 올해 심사에서 군 장성 출신 국방부 고위공무원은 국방부 산하기관으로 무사히 옮긴 반면, 같은 기관에 재취업하려던 대령 출신 전직 공무원은 탈락해 형평성 시비가 일었다.
공무원의 재취업은 공직에서 갈고 닦은 전문성을 활용해 인생의 제2막을 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엄격하고 객관적인 심사가 전제되지 않는 한 과거의 관피아 폐단이 반복될 우려가 많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불신을 줄이려면 재취업 심사 회의록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대신 당사자의 권리구제 수단을 보완해 퇴직공무원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현지호 인턴기자(성균관대 경영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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