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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다키스트 아워’ 그리고 역사적 교훈

입력
2018.02.15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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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이 런던 지하철에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물론 국민적 총화단결이란 영화적 메시지를 위해 만들어진 장면이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이 런던 지하철에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물론 국민적 총화단결이란 영화적 메시지를 위해 만들어진 장면이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역사를 대체 어디다 써먹을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역사 좋아한다 해봐야 쉰내 나는 아재 취급 당하는 시대에서 말이다. 그래서 ‘역사적 교훈’이란 말을 그렇게나 소중하게 쓰다듬는다. 그렇다면 수십 년간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역사학자들이야 말로 이 세상에 둘도 없을 현자(賢者)들이어야 할 텐데, 글쎄.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시길. 역설적인 건 엄격한 역사가일수록 ‘역사에서 교훈을 얻자’는 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얘길 하는 건 평창올림픽으로 조성된 평화 분위기가 불편한 나머지 ‘평양’올림픽이라고 비꼬는 이들이 ‘네빌 체임벌린’이란 이름을 끄집어내서다. 히틀러에게 유화정책을 편 체임벌린이 나왔으니 강경하게 대응한 ‘윈스턴 처칠’도 세트로 묶여 나온다. 마침 2차대전 당시 ‘불굴의 처칠’을 재조명하는 영화 ‘다키스트 아워’도 상영 중이다. ‘평양’올림픽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이 영화를 단체 관람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체임벌린과 처칠이 남긴 교훈 중엔 이런 것도 있다.

가령 처칠은 승리가 다가오자 슬슬 태도를 바꿨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알려진 복지정책 ‘베버리지 보고서’의 즉각 시행을 거부했다. 라디오 연설로는 온갖 색깔론을 쏟아냈다. 이런 처칠의 언행을 두고 상대당인 노동당조차 “알아서 망해주니 땡큐~!”라는 평을 내놓을 정도였다. 보수당은 종전 직후 총선에서 참패, 노동당에 정권을 내줬다. 이후 보수당은 노동당 정책 뒤집기를 포기했다.

‘다키스트 아워’를 본 한 칼럼니스트는 처칠의 리더십보다 영화 속에 묘사된 영국 국민의 단호한 항전 의지가 더 감동스러웠다고 썼다. 맞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국민을 위하지 않고 색깔론만 내세운다면 제 아무리 불굴의 전쟁 영웅이라 해도 투표로 패배시켜버리는 영국 국민의 또 다른 단호함도 배울 만하다 생각한다.

1956년 수에즈 운하를 이집트가 국유화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영국 총리는 앤서니 이든. 그는 장관 시절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반발해 장관직에서 물러난 전력이 있다. ‘체임벌린의 교훈’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사태 초기 강경 군사 노선을 택했다. 하지만 중동 갈등이 부담스러웠던 미국이 영국을 주저앉혔다. 이 사태는 영국 패권의 종말을, 전세계에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시킨 사건으로 꼽힌다. 역사적 교훈에 충실하면 이런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또 다른 교훈을 안겨준다.

우리에게도 역사적 교훈은 많다. 가령 이승만을 국부(國父)라 추켜 올리는 이들은 그의 국제적 시야와 노련한 외교술이야 말로 우리가 배울 중요한 교훈이라 생각한다. 맞다. 하지만 이런 교훈도 있다. 전쟁과 북진통일과 공산당 타도를 외치는 이들이 정작 전쟁 터지면 야밤에 제일 먼저 다리 끊고 도망치더라는 교훈 말이다. 그렇게 전쟁하자 으름장 놓던 이들이 나중에는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할 수도 있다는 교훈도 가능하다.

어쩌면 세상이 원하는 역사의 진짜 효용은 여기 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하고픈 주장을 그럴 듯 하게 보이게 해줄 만한 장식품이 가득한 만능도구상자. 하여 역사의 교훈을 내세우는 자, 스스로는 교훈을 설파한다 생각하겠지만 실은 자기 시야의 범위와 한계, 이데올로기와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내보이는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손쉽게 말하지만, 시간은 우리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게 한다. 역사적 교훈이란, 그렇게 까다로운 녀석이다.

북핵 방정식. 서로를 끊임없이 탐색해나가는 복잡한 과정일 게다. 그 어느 누구도 멍청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게임이기도 하다. 때론 희망에 넘치겠지만, 때론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교훈을 봐야겠다면, 주의 깊게 전체 맥락을 봐야 한다. 사실 역사의 일부를 똑 떼어내 오ㆍ남용하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긴 하다. 어릴 적 불장난처럼.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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