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기다렸던 골인가.
올림픽 사상 첫 단일팀을 이룬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14일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일본과 B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0-2로 끌려가던 2피리어드 9분31초에 역사적인 골을 터뜨렸다. 미국 입양아 출신 박윤정의 패스를 받은 귀화 선수 랜디 희수 그리핀이 슈팅을 때렸고, 퍽은 상대 골리의 다리 사이를 통과해 골문으로 들어갔다.
단일팀의 올림픽 3경기, 33번째 슈팅 만에 나온 득점이다. 세계 랭킹 9위 일본의 골망을 흔든 것은 2012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시아챌린지컵에서 한재연(은퇴)의 첫 골 이후 6년 만이다. 숨죽였던 장내는 들끓었다. 6,000석을 가득 메운 관중이 일제히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환호했다. 우리 팬들이 “우리는”을 선창하자, 북한 응원단이 “하나다”를 외쳤다.
단일팀의 1호 골 주인공인 그리핀은 지난해 3월 특별 귀화한 선수다. 미들네임 ‘희수’를 물려준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듀크대 생물학과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고 있는 재원이다. 그리핀이 조국에서 뛰는 모습을 보기 위해 부모님은 물론 미국으로 이민 간 외조부모까지 온 가족이 한국 땅을 밟았다. 딸의 감격적인 골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본 어머니 강희수씨는 “모두에게 기쁜 일”이라며 “특히 외할머니 앞에서 골을 넣어 더욱 기뻤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날 경기 전까지 일본에 7전 7패, 1득점 106실점으로 절대 열세를 보였다. 일본은 숙명의 라이벌이다. 앞선 두 경기에서 모두 0-8 완패를 당했던 선수들도 일본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최지연은 “일본전에서 첫 골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며 의욕을 보였고, 김희원은 “한국인의 한일전 마음가짐은 다르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일본을 맞아 출전 엔트리 22명 중 4명을 북한 선수로 채운 단일팀은 그러나 경기 시작 4분도 안 돼 2골을 허용했다. 이후 경기는 대등했다. 단일팀은 0-2로 뒤진 2피리어드 9분31초에는 그리핀이 만회골을 넣었다. 기세를 몰아 동점을 노렸고, 골리 신소정의 선방까지 더해지면서 일본을 압박했다. 그러나 3피리어드 11분42초에 일본의 고이케 시오리에게 추가골을 내줬다. 경기 막판 골리를 빼는 공격 전술을 폈으나 1분27초를 남기고 우키타 루이에게 쐐기골을 허용했다.
결국 1-4로 패해 3패로 조별리그를 마친 단일팀은 B조 4위(최하위)에 그쳤다. 기대했던 1승을 거두지 못한 탓에 경기 후 선수 대부분은 눈물을 훔쳤지만 선수 가족들은 관중석에서 ‘힘들게 달려온 이 올림픽 무대가 앞으로 나아갈 꽃길의 시작이기를’ 문구가 적힌 인형을 링크 위로 던져 자랑스럽게 싸운 딸들을 위로했다.
올림픽에서 첫 승을 거둔 일본(1승2패)은 B조 3위다. 단일팀은 18일부터 5∼8위 순위 결정전 두 경기를 치른다. 일본과 다시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강릉=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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