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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부츠신는 그들 “뚱뚱한 털보배우는 우리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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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부츠신는 그들 “뚱뚱한 털보배우는 우리가 최고”

입력
2018.02.14 15: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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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만든 즉흥대사가

올 시즌부터 대본에 적히기도

“재현이는 에너지 충만한 배우”

“창석 형님은 그 자체가 돈”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감초 돈 역할을 맡아 세 번째 공연에 나선 배우 고창석(오른쪽)과 심재현. 이들은 무대에서 내려오면 술잔을 기울이는 '현실 친구'이기도 하다. 홍인기 기자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감초 돈 역할을 맡아 세 번째 공연에 나선 배우 고창석(오른쪽)과 심재현. 이들은 무대에서 내려오면 술잔을 기울이는 '현실 친구'이기도 하다. 홍인기 기자

같은 작품에서 같은 역할로 함께 캐스팅된 두 사람은 어느덧 세 번째 시즌 공연을 함께 한다. 햇수로는 5년째다. 한 작품에서 같은 배역을 맡으면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생기기 마련. 하지만 두 사람에게 ‘경쟁은 웬 말’이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는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뚱뚱하고 털 많은 배우들 중 우리가 최고”라며 껄껄 웃는다.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감초 돈 역할을 맡은 배우 고창석(48)과 심재현(37)이다.

고창석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신스틸러로 유명하다. 언론과의 만남을 꺼리지 않던 그지만 뮤지컬 작품으로는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인터뷰라는 게 계속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관객들도 궁금해지는 게 있을 때 하려고 하다 보니 몇 년이 흘렀다.“ 그가 무대에 오르면서 언론을 멀리한 이유다. 그런 그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나선 건 후배 배우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다. 13일 서울 한남동 공연장 블루스퀘어 분장실에서 심재현과 함께 고창석을 마주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3년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에서 시작됐다. 이 작품의 두 시즌을 함께한 둘은 ‘킹키부츠’ 한국 초연을 앞두고 돈 역할로 오디션을 봤다. “두 명 중 한 명만 오디션에 붙었으면 서로 어색할 뻔 했는데, 다행히 같이 붙어서 기분 좋게 준비를 시작했죠.”(고창석), “만약 창석 형님과 더블 캐스팅이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이 작품에 도전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심재현). 1980년대 전설적인 팝 디바 신디 로퍼가 작곡한 음악을 바탕으로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킹키부츠’는 국내에서는 이듬해 첫 공연됐다. 한 사업가가 가업인 구두공장을 되살리기 위해 여장남자들을 위한 부츠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창석과 심재현은 ‘킹키부츠’의 원년 멤버로 여전히 부츠를 신고 있다.

후배는 “형님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고 강조하는데, 고창석은 손을 내저었다. 자신은 가르쳐준 게 없고 “오히려 재현이 연기가 재미있으면 ‘재현아 너의 아이디어를 내가 잘 쓰마’하고 활용한다”고 했다. 선후배 간의 간격을 좁히고 동료로서 서로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같은 걸 준비하는 배우들인데, 구멍 하나라도 함께 깊게 파 들어가는 게 낫잖아요. 배우가 다르면 같은 연기라도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는데, 서로 경쟁하는 강박은 내려놓는 게 낫죠. 이렇게 하면서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고창석)

뮤지컬 '킹키부츠'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 고창석(오른쪽)과 심재현. 홍인기 기자
뮤지컬 '킹키부츠'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 고창석(오른쪽)과 심재현. 홍인기 기자

둘은 무대 위에서 굽 높이 10㎝, 총 길이 80㎝의 빨간 부츠를 신고 노래를 부른다. 처음엔 올라 서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어느덧 “내 힐이 된 듯 편안하다”는 부츠처럼, 돈 역할도 이제 맞춤옷을 입은 듯하다. 돈은 공연 시작 전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휴대폰을 끄고, 사진 촬영은 불가하다는 말을 전하는 바람잡이 역할도 한다. 초연 당시 정해진 대사는 없었다. 그날그날 관객들의 반응과 컨디션에 따라 공연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 해 부담도 컸다. 고창석은 “초연 때는 둘 다 무대 오르기 전 한숨부터 쉬었던 기억이 난다”며 “이제 200회가 넘어서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웃었다. 객석을 뒤로하고 ‘셀카’를 찍는 건 고창석이 만들어 낸 장면이다. 이들이 합작해 낸 돈은 이제 해외 프로덕션에서 그대로 쓰고 싶다는 연락이 올 정도로 인정 받았다. 올해부터는 두 사람이 만들어낸 대사들이 대본에 적혔다.

방송가와 영화계를 종횡무진 활약하면서도 고창석이 무대를 떠나지 않는 이유도 이런 관객과의 소통이 있어서다. “제가 마당극으로 배우를 시작해서인지, 배우를 큰 틀에서는 광대라고 생각해요. 혹자는 관객과 끊임없이 타협하는 배우는 뒤떨어진다고 하는데 저는 관객에 대한 감각이 날카롭게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창석은 서울 마포구청 인근에 2016년 자비로 연습실도 열었다. 함께 공연을 하는 후배 배우, 연출가들과 함께 연습을 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심재현 역시 ‘킹키부츠’ 팀에서 후배 배우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심재현은 뮤지컬계에서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실력파 배우다. 앙상블 배우들의 대타인 스윙배우로 출발해 어느덧 주역을 맡게 됐다. “선배의 어설픈 조언이 후배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창석 형님의 말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다만 스윙 배우들의 고충을 알기 때문에 그런데서 힘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너무나 돈독해 보이는 두 사람에게, 그래도 자신만의 돈을 어필해 달라고 요구했다. 고창석은 되려 심재현을 홍보해주겠다고 나섰다. “재현이는 노래, 대사, 움직임까지 돈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에너지가 충만한 배우예요. 마지막 하이라이트 넘버도 생목으로 불러요. 이걸 심재현만큼 할 수 있는 배우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제가 그걸 따라 하다가 음이탈을 한 50번 냈거든요. 하하.” 선배의 애정 가득한 말에 후배는 이렇게 답한다. “창석 형님은 그냥 그 자체가 돈이에요. 제가 MSG가 첨가된 돈이라면, 형님은 자신만의 자연스러움이 있어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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