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코카인 공급 막으려
1991년 특례법... 관세 철폐
콜롬비아 장미 美 진출 이끌어
‘밸런타인 데이’(14일)를 맞아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꽃은 단연 ‘사랑의 꽃’ 장미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이 때는 장미 꽃 가격이 높아지지만, 미국은 예외다. 평소 한 다발 20달러 내외인 가격이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밸런타인 데이 특수 현상’이 거의 없는 셈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0일(현지시간) ‘콜롬비아산(産) 장미의 미국 시장 대량 진출’을 그 해답으로 제시했다. 또 1990년대 이후 대폭 재편된 미국과 콜롬비아 화훼산업의 엇갈린 명암을 소개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콜롬비아산 장미는 미국 시장을 사실상 완전히 장악했다. 지난해에만 장미 등 10여 품종의 꽃 40억송이가 미국에 수입됐다. 게다가 수요가 늘어나면 기막히게 공급도 그만큼 늘려 미국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실제로 1월말부터 밸런타인 데이까지 약 3주 동안 콜롬비아 화훼업자는 장미 생산량을 대폭 늘린다. 덕분에 매일 30여대 화물기에 대당 100만 송이가량의 장미가 콜롬비아를 떠나 마이애미로 향한다. 미국에 들어온 장미들은 다시 냉장트럭에 실려 남플로리다 지역의 대규모 창고로 운송된다. 하루에만 200대 이상의 트럭이 장미들을 실어 나른다. 부케 등으로 재포장된 장미는 일본이나 러시아 등으로 수출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미국 내에서 소비된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경우 이맘때 콜롬비아산 장미 2,400만 송이를 사들여 매장에서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콜롬비아산 장미의 이런 사연은 마약과 관계가 깊다. 한때 콜롬비아는 미국으로 마약(코카인)을 공급하는 기지였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는 1991년 ‘안데스 무역 특례법’을 통해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볼리이바, 페루 등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관세를 대부분 없앴다.
콜롬비아 경제를 양성화하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미국 시장에 접근하도록 유인책을 제시, 마약 대신 다른 물품을 미국에 팔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 때 6%가량이었던 콜롬비아산 장미의 수입관세도 사라졌다. 하루 12시간의 일조량, 2,500m 고도 등 천혜의 장미생산 조건과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이 결합되면서 콜롬비아에서 화훼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그러나 이는 미국 화훼산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27년간 미국 장미 생산량은 5억4,500만 송이에서 3,000만 송이로 95%나 감소했다. WP는 “세계화의 냉혹함과 효율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워싱턴의 의사 결정, 시장의 압력이 두 나라의 장미 산업을 완전히 뒤바꾼 것”이라고 분석했다. 콜롬비아와 경쟁에서 패배한 미국의 장미 재배 산업은 이제 결혼식 등 특별 행사를 위해 디자인된 고급 장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꽃 재배업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곧 자국 산업 보호 정책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지만, 이미 굳어진 시장 구도를 되돌리긴 불가능해 보인다. ‘값싼 장미’에 대한 미국인들의 선호가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장미 무역 균형 상태가 깨지면) 콜롬비아는 더 많은 마약을 생산하려 하는 움직임이 커질 것”(콜롬비아 화훼농장 운영자 마리오 비센티)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약 위험에 노출되느니, 미국 화훼업자의 비난을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권민지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