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하 주차장ㆍ학교 등
대피 차량 뒤엉켜 큰 혼잡
일부 초등학교 운동장 대피소
조명도 없어 추위ㆍ공포의 밤
“기상청서 문자 발송한 줄 알고…”
포항 자체 시스템 갖추고도 팔짱
부상 40여명ㆍ건물 250여건 파손
학교 47곳 등 공공시설도 피해
11일 규모 4.6의 경북 포항지진 당시 기상청의 긴급재난문자가 7분이나 지나 발송돼 비난이 일고 있는 가운데 포항시가 자체 구축한 재난 알림 문자도 전송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진 때는 걸어서 대피해야 한다는 매뉴얼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차량에 탑승한 채 대피소를 찾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포항시는 지난 2016년 9월 경주지진 후 지진을 비롯, 태풍 등 대규모 재난 발생을 미리 알리거나 곧바로 알리는 문자전송 시스템을 갖췄지만 정작 11일 규모 4.6의 지진 때는 보내지 않았다. 포항시 재난안전대책본부 이름으로 발송되는 재난 알림 문자는 읍ㆍ면ㆍ동사무소 등을 통해 수신을 동의한 사람만 받을 수 있다. 포항시 전체 인구 약 52만명 중에 7분의 1에 달하는 7만여 명이 신청한 상태로, 지진 발생 시 규모와 위치는 물론 인근 옥외대피소 위치도 사이트로 알려준다. 포항시는 규모 3.0 이상 시 문자를 전송하나 11일 새벽 규모 4.6의 지진에는 기상청의 긴급재난문자만 믿고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포항시 관계자는 “기상청에서 지진 정보를 받은 뒤 수동으로 메시지를 만들어 보내기 때문에 항상 한발 늦게 전송되는데다 기상청에서 긴급재난문자를 보낸 줄 알고 발송하지 않았다”며 “시스템을 다시 정비해 다음부터는 꼭 전송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옥외대피소로 지정된 학교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진 때 옥외대피소에는 차량 진입이 안되나 지진에 놀란 시민들이 차를 타고 들어가면서 일부 학교 운동장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더구나 일부 초등학교는 야간 조명이 켜져 있지 않아 학교로 대피한 시민들이 새벽 시간 추위와 함께 어둠의 공포에 떨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포항시는 뒤늦게 옥외대피소로 주로 이용되는 포항지역 학교에 2차 사고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포항교육지원청에 협조를 요청했다.
지진 매뉴얼도 제대로 홍보되지 않았다. 정부가 내놓은 지진국민행동요령에는 대피 때 차량을 이용해선 안되고 걸어서 이동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11일 포항시민 상당수가 자가용을 타고 대피하면서 일부 아파트 단지는 큰 혼잡을 빚었다.
김모(48ㆍ포항 장량동)씨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서로 빠져 나오려는 차량이 뒤엉키면서 이대로 죽는가 하는 더 큰 공포가 생겼다”며 “가족 모두 빨리 대피해야 한다는 마음에 걸어서 나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지진 발생시 차량을 이용하다 보면 도로가 갈라지고, 교량이 무너지는 사태에 빨리 대응하기 힘들다”며 “도심 도로에서도 건물 붕괴 등으로 차량이 압착될 우려가 크고, 차량이 장애물에 끼게 되면 탈출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포항지진 피해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포항에는 이번 규모 4.6 지진으로 학교 47곳, 여객선터미널 1곳, 보경사 문화재 1곳, 포항역 등 공공시설 54곳이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지진 부상자는 40명으로 이 가운데 2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나머지는 경미한 상처로 병원을 찾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포항시는 피해주민 보상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여진에 따른 피해신고를 접수한 뒤 읍ㆍ면ㆍ동 공무원이 현장 조사를 벌여 주택 파손 정도에 따라 보상 지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12일까지 포항시에 접수된 건축물 피해 신고는 250여건이다. 포항시는 주민 불만을 없애기 위해 두 달 정도 최대한 늘려 접수를 받고 조사가 끝나면 규모 5.4 본진 때와 마찬가지로 피해 정도에 따라 100만~900만원을 지원한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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