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 초반부터 역전 드라마가 잇따르고 있다. ‘황제’ ‘여왕’ ‘전설’라는 수식어를 가진 유력 금메달 후보들조차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안심할 수 없게 됐다.
11일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루지 남자 싱글에서 무명의 신예 데이비드 글라이셔(24)가 오스트리아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말 그대로 ‘깜짝 금메달’이었다. 이 종목 금메달은 당연히 올림픽 3연패에 도전 중인 ‘썰매 황제’ 펠릭스 로흐(29ㆍ독일)가 가져갈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 출신인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로흐 응원 차 슬라이딩 센터를 찾았다. 실제로 로흐는 3차 주행까지 1위를 달렸다. 하지만 마지막 4차 주행에서 대이변이 일어났다. 로흐는 마지막 4차 주행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종합 성적 5위로 쳐졌고, 3위였던 글라이셔가 1위로 성큼 올라선 것. 글라이셔는 역전승을 확인한 뒤 한동안 헬멧을 부둥켜안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글라이셔는 국제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이 없는 신예중의 신예다. 지난해 1월 유러피안챔피언십에서는 경기 중 썰매가 전복되면서 큰 부상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평창에서 생애 최고의 기량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스노보드 남자 슬로프스타일에서도 이날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미국 스노보드 대표팀 막내 레드먼드 제라드(18)는 2차런까지만 해도 46.4로 하위권에 쳐져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3차런에서 87.16을 기록하며 강력한 우승 후보 마크 맥모리스(25ㆍ캐나다)를 3위로 밀어내고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3번의 연기 중 가장 높은 점수로 순위를 가리는 슬로프스타일의 종목 특성도 대역전극에 한몫 했다.
10일 스키애슬론 여자 15㎞에서도 반전이 일어났다. 샬롯 칼라(31ㆍ스웨덴)가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 ‘여왕’ 마리트 비에르겐(37ㆍ노르웨이)을 제치고 이번 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오르막길 막판 스퍼트가 인상 깊었다.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경기 초반 넘어지는 실수를 극복하고 올림픽 기록을 세우며 결승선을 통과했고,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시멘 헤그스타드 크뤼게르(24ㆍ노르웨이)도 스키애슬론 남자 30㎞에서 경기 초반 넘어져 꼴찌로 쳐지고도 결국 1위로 골인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선수들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의외성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반대로 관전자들은 더욱 즐겁게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끽하게 됐다.
평창=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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