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미국 출신 귀화 공격수 랜디 희수 그리핀(30)은 외조부모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난 그가 한국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외조부모가 사는 시카고 한인 타운뿐이었다. 그리핀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했다. 영어가 익숙하지만 외조부모를 부를 때는 꼭 한국말로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말한다.
그리핀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족들이 모처럼 한국 땅을 밟았다. 어머니 강희수씨와 미국인 아버지 탐 그리핀 그리고 외할머니(김효숙), 외할아버지(강태두)도 함께 했다. 이들 네 명은 그리핀이 선물한 유니폼을 입고 10일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과 스위스의 예선전을 관전했다.
그리핀 가족의 유니폼은 특별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니폼 뒷면에 새겨진 이름은 ‘DAD’(아빠), ‘MOM’(엄마)으로 평범했지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유니폼엔 ‘HALABEOGY’ ‘(할아버지), ‘HALMONY’(할머니)가 새겨졌다.
외할머니는 “손녀딸이 올림픽에 꼭 입고 오라고 선물한 유니폼”이라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와서 정말 많은 일을 하고, 고생을 한 덕분에 본인과 우리 가족도 존재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하며 선물한 유니폼”이라고 밝혔다. 외할아버지도 “손녀 덕분에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면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미소를 지었다. 옷에 이름과 함께 새겨진 등 번호는 ‘37’로 통일했다. 37은 외할머니의 출생 연도다.
그리핀의 외할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난 건 1971년이다. 공부를 위해 갔다가 정착하게 됐다. 그리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고, 어머니는 딸에게 자신의 한국 이름 ‘희수’를 미들 네임으로 물려줬다.
여섯 살에 클럽 팀에서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그리핀은 2006년 미국 명문 하버드대에 입학,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동생도 아이스하키와 공부를 병행하며 브라운대에 입학했다. 외할머니는 “손녀딸에게 ‘왜 운동을 하느냐. 공부에만 집중하지’라고 얘기했는데, ‘둘 다 잘할 수 있다’는 말을 하더라”면서 “그런데 실제 두 가지를 다 잘했다”고 흐뭇해했다.
하지만 그리핀은 2010년 대학 졸업 후 뛸 곳이 없어져 아이스하키 스틱을 내려놨다.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듀크대 생물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수 중이던 2015년 그리핀은 지금의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팀 합류 제안을 받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초청 선수 자격으로 대표팀 친선 경기를 뛰다가 지난해 3월 특별 귀화 선수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리핀은 “한국에서 내 핏줄의 다른 한 면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얻게 돼 정말로 특별하다”며 “어머니의 나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뛰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강릉=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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