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릴 라마포사 부통령 겸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당대표가 11일(현지시간) 공개연설에서 ANC 지도부가 다음날 만나 제이컵 주마 현 대통령으로부터 새 정부로의 권력 이양 과정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마 대통령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이날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석방 28주년 기념 행사에서 라마포사는 “당이 대통령의 거취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가집행위원회(NEC)가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여러분(시민)이 이 문제를 결착 짓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라마포사는 “남아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신중하고 목적성 있게 권력 이양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권력 이양 논의의 최대 목적은 남아공 국민의 통합”이라고 말했다. AP통신은 라마포사의 발언이 그간 주마 대통령의 거취를 둘러싸고 집권당 ANC 내부 알력 다툼이 있었다는 몇몇 보도를 확인하면서도, 사실상 주마 대통령의 퇴진을 확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9년간 남아공을 통치해 온 주마 대통령은 고향 콰줄루나탈주 은칸들라에 공금을 유용해 호화 사저를 건설했다는 스캔들, 인도계 재벌가 굽타 가문과 은밀히 교류하며 이들이 인사권을 좌지우지하게 했다는 의혹 등에 휘말려 부패, 사기, 공갈, 돈세탁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수 차례 불신임안이 야당에 의해 의회에 제출됐지만, 그간 다수 의석을 차지한 ANC 의원들의 저지로 부결됐다.
현재 주마 대통령의 임기는 대략 14개월이 남아 있지만 집권당이 결심만 하면 주마 대통령을 불신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ANC 내 개혁파로 분류된 라마포사는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부패 일소’를 공언하고 주마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압박해 왔다. 이 방법은 주마 대통령이 전임자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을 사퇴시킬 때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주마 대통령은 일단 퇴진 요구를 거부하며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지만, 지난주부터 라마포사와 회담해 권력이양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방송의 앤드류 하딩 아프리카 특파원은 11일 연설이 라마포사와 ANC 지도부의 대통령을 향한 ‘최후통첩’에 가깝다고 전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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