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이었다. 2017 알마티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출전할 선수들이 내가 속해 있는 국가대표 훈련 파트너로 합류했다. 잊고 있던 한 선수의 모습이 보였다. 어려서부터 대단한 유망주로 꼽혔던 임효준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친구였지만 워낙 부상이 잦다 보니 ‘업계’에서 차츰 잊혀져 갔기에 사실 내 머리 속에서도 잠시 지워져 있었다. 2012년 청소년 올림픽 때 500m 챔피언에 오르면서 부활하는가 싶었는데 이후에 또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런 효준이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 왔다. 경기 전에 효준이를 잠깐 만났을 때 감이 왔다. 몸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원래 부상만 아니면 스타트, 스피드, 체력, 승부처에서의 ‘한 방’ 기질까지 쇼트트랙에 필요한 조건들을 완벽히 갖춘 선수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효준이도 엄청 긴장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경기장을 둘러보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라고 얘기 해 줬다. 예선 이후 심적 안정을 찾은 효준이의 결선은 전체적으로 독보적인 레이스였다. 피나는 재활훈련, 지구력 훈련,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것이 실전에서 먹혀 들었다. 강릉 아이스아레나의 빙질 관리도 워낙 잘 돼 있었다.
효준이가 정말 대단한 건 쇼트트랙은 보통 6, 7명이 한 조에서 뛰는데 어드밴스(실격 행위를 한 선수로 피해를 입은 경우 다음 라운드 진출권을 추가로 얻는 것)가 속출한 탓에 준결승에서 8명, 결선에선 무려 9명이 경쟁을 했다는 점이다. 우승 확률도 떨어지지만 빙판이 손상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황)대헌이가 넘어진 것도 100% 그 때문이다.
빙판 때문은 아니었지만 효준이도 두 번이나 무게 중심을 잃는 아찔한 장면이 있었다. 밸런스 운동도 많이 했겠지만 사실 훈련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변수다. 효준이처럼 두 번이나 위기를 넘긴 경우는 나도 거의 보지 못했다.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정해준다는 말은 이 모든 난관을 뚫어낸 효준이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한 두 번만 부상을 당하고 수술을 해도 스케이트화를 벗는 선수가 많은데 그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에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표 선발전에서 효준이에게 밀린 나 또한 이날이 방송 해설위원 데뷔 전이었기에 더욱 만감이 교차했다. 1위로 골인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다. 내가 보유했던 올림픽 기록을 깬 걸로 확인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아니에요, 아니, 깨졌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솔직히 서운한 감정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외국 선수가 아닌 우리 선수가, 그것도 모진 풍파를 버텨 낸 효준이가 해 냈다는 사실이 선배로서 자랑스러웠다. 복잡한 심경 표현이 그렇게 나와 버린 것 같다. 나도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효준이의 기록에 다시 도전할 것이다.
효준아, 많은 시련과 노력이 있었던 걸 잘 알고 있다. 너무 고생했고 축하한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이니 남은 내 1,000m 올림픽 기록도 깨며 또 한번 멋진 금메달을 부탁한다.
이정수 전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ㆍ2010년 밴쿠버 올림픽 2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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