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하는듯 자연스럽게
침착한 터치 후 믿기 힘든 역전극
지난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준결승에서 한국 대표팀이 보여준 역대급 역전레이스는 평소 극한 상황을 가정하고 꾸준히 연습한 결과였다.
트랙 27바퀴를 도는 이날 경기에서 한국팀 3번 주자였던 막내 이유빈은 4번째 바퀴를 돌면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금세 선두와 반 바퀴 이상 차이가 벌어졌다. 그러자 에이스 최민정이 재빨리 다가와 이유빈과 손을 터치했고 이때부터 믿기 어려운 따라잡기가 시작됐다. 대표팀은 속도를 올리며 선두권과 조금씩 거리 차를 좁혔고 17번째 바퀴에서 3위로 올라섰다. 이후, 20번째 바퀴부터는 줄곧 선두를 유지하면서 올림픽 신기록(4분 06초 387)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비록 이어진 준결승 2조에서 중국이 이 기록을 경신하긴 했지만, 한 차례 넘어진 팀의 기록이라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표팀은 그간 경기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해 연습했다고 한다. 선수끼리 충돌할 때, 상대 선수가 반칙을 시도할 때, 우리 선수가 넘어졌을 때 등 모든 극한 상황이 머리는 물론 몸으로도 체득돼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김예진은 “평소에도 넘어졌을 때를 대비한 훈련을 했다”면서 “자연스럽게 대처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준결승 경기 출발선에는 첫 번째 주자 심석희 뒤에는 세 번째 주자인 이유빈이 서 있었다. 심석희가 출발 직후 몸싸움에 밀려 넘어지면, 곧바로 터치해 달리기 위해서였다. 또 이유빈이 넘어졌을 때도 다음 주자인 김예진이 아닌, 최민정이 달려와 손을 터치한 후 질주했다. 김예진은 이미 안쪽 코스에서 터치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즉각적으로 출발하기가 어려웠다.
임기응변 능력도 빛을 발했다. 애초 마지막 주자로는 막판 스퍼트가 강한 최민정이 예정돼 있었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로 순서가 뒤바뀌면서 첫 주자였던 심석희가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했다. 돌발 상황에도 우리 대표팀은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평소 훈련 내용을 실전에서 재연하며 기적의 레이스를 펼친 것이다. 경기 후 미국 야후 스포츠는 NBC해설위원인 전 미국 대표 안톤 오노의 중계 멘트를 인용해 “한국이 넘어졌을 때 오노가 ‘아직 시간이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한국은 따라잡고 따라잡아 결국 선두로 나섰다. 오노도 ‘얼마나 거리를 벌려야 한국을 이길 수 있을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국 여자팀의 역전극을 격찬했다.
강릉=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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