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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수백만 아프간 난민 강제송환 코앞인데… 국제사회는 침묵만

입력
2018.02.09 19: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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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내 아프가니스탄 난민 캠프 모습.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부에 등록된 아프간 난민들은 최소 138만명에 달한다. AP 연합뉴스
파키스탄 내 아프가니스탄 난민 캠프 모습.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부에 등록된 아프간 난민들은 최소 138만명에 달한다. AP 연합뉴스

2007년 3월5일 필자는 파키스탄 북서부 연방자치부족지대의 중심도시 페샤와르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르하르 지방으로 넘어가는 토르캄 국경에서 깜짝 놀랐다. 세상에서 본 가장 자유로운 국경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파가 오갔지만, 그들의 여행증명서를 점검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 켠에 있는 이민국 사무실에 들러 출국심사를 받는 사람은 적어도 그날 오전엔 필자뿐인 듯했다. 이민국 직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외국인에겐 원래 허용치 않는 월경’이라면서 마지못해 도장을 찍어줬다.

도떼기시장 같던 그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아프간 난민들이었다.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파키스탄은 40년 가까이 아프간 난민들을 수없이 받아들였고, 교육ㆍ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파키스탄 내 아프간 난민들은 한때 600만명을 웃돌았다.

그런데 2016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토르캄 국경은 ‘전자여권 소지자’라는 월경 조건을 붙였고, 폐쇄되는 날도 잦아졌다. 예컨대 지난해 2월16일 파키스탄 남부 신드 지방에서 발생한 수피 사원 공격은 즉각 토르캄 국경 폐쇄로 이어졌다. 해당 공격에 대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는데, 이들과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파키스탄 탈레반(TTPㆍ아프간 탈레반과는 별개의 조직)’이 아프간에 은신처를 두고 있다는 게 파키스탄의 주장이었다. ‘테러리스트 월경 차단’이라는 명분으로 국경 폐쇄에 들어간 셈이다. 역으로 아프간 정부 또한 ‘아프간 탈레반’이 파키스탄에 은신처를 두고 아프간을 공격한다고 지적해 왔다. 특히 최근 연이은 테러 공격의 배후로 지목된 ‘하까니 네트워크’(아프간 탈레반 내 강성 분파)가 파키스탄 정보국(ISI) 및 군대의 비호를 받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3월 7일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가는 토르캄 국경 앞에서 아프간 난민들이 본국 송환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해 3월 7일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가는 토르캄 국경 앞에서 아프간 난민들이 본국 송환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처럼 자국 내 테러에 대한 상호책임론을 제기하는 두 나라 사이에는 급기야 ‘국경 장벽’까지 건설될 전망이다. 이를 주도하는 파키스탄 정부는 올해 말까지 양국이 마주한 2,400㎞ 국경의 92%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양국 관계의 경색 국면에서 최대 피해자는 파키스탄에 거주하는 아프간 난민들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해 12월 이들의 등록증명서(PoR) 기한을 마지막으로 30일만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가, 최근 각계의 권고를 받아들여 60일 더 연장했다. 결국 250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파키스탄 내 아프간 난민들은 3월31일 이후엔 모두 본국으로 되돌아가야 할 처지다.

물론, 아프간 난민의 송환은 ‘테러와의 전쟁’ 개시 이듬해인 2002년부터 이뤄져 왔다. 그 때부터 2008년까지 약 350만명 정도가 파키스탄에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다소 뜸해졌던 송환은 2016년 6월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 상황이 악화하는데도 양국 관계가 틀어지자 파키스탄은 ‘난민 송환 카드’를 꺼내 들어 스스로의 입지를 공격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하반기에만 등록 난민 37만명, 미등록 난민 25만명 정도가 반강제적으로 송환됐다.

지난달 13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한 빈민가에서 놀이를 하고 있는 아프간 난민 어린이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한 빈민가에서 놀이를 하고 있는 아프간 난민 어린이들. 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를 ‘자발적 송환’이라고 불러 인권단체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해 2월 발행한 ‘파키스탄은 강요하고, 유엔은 공모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불법적 강제송환 사례”라고 규정했다. 보고서는 “UNHCR은 (난민들이 돌아가게 될 아프간 치안정보를 공유해야 하는데도) 송환 대상자들에게 보조금을 기존 200달러에서 400달러로 올려주겠다면서 설득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이 2016년 10월 아프간 정부에 “구호자금을 주겠다”고 제의한 뒤, 유럽 내 아프간 난민을 강제송환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심지어 독일은 아프간을 ‘안전한 국가’로 규정, 난민 추방을 꾸준히 강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UNHCR 파키스탄 지부는 8일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난민들의 귀국 결정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것으로, 2016년 송환이 강제적이었다는 비판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난민송환 급증 배경에 대해선 “전통적으로 통제 없이 월경이 가능했던 토르캄 국경이 적법 서류를 갖춰야만 넘을 수 있도록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키스탄의 강경 방침을 부추기는 또 다른 변수도 불거졌다. 새해 첫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년간 파키스탄에 330억달러를 원조했지만, 돌아온 건 거짓말과 속임수뿐이었다”는 트윗을 올렸다. 카와자 무하마드 아시프 파키스탄 외교부 장관은 다음날 “파키스탄과 미국의 동맹은 끝났다”고 선언했고, 지난달 4일 미 국무부는 파키스탄 군사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1월 하반기 열흘 동안 아프간에서는 병원, 시민단체 등에 대한 테러 공격이 잇따랐다. 이달 3일자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아프간에선 하루 평균 50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탈레반이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시시각각 올리는 남부 지역의 교전 상황은 아예 언론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런 전쟁통 속에서 수백만명이든, 수십만명이든 아무 대책 없이 아프간 난민들을 송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여파는 어느 모로 보나 위험할 수밖에 없다. 난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송환이 인도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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