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등 6곳 상임 29명 중 16명
후임자 정해지지 않아 자리 유지
임기 만료 7개월 지난 이사도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기관장
재신임 결정 안돼 인사 미뤄진 탓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민간 기업에선 회사 경영을 이끌고 있는 임원이나 감사 업무를 총괄하는 상임감사가 임기가 끝났는데도 출근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다. 이사회는 경영 공백을 막기 위해 늦어도 임기 만료 한달 전엔 후임자를 정한다. 그러나 정책 금융을 담당하는 금융 공기업에선 한 번 임명된 임원은 임기 만료 이후에도 일하는 게 다반사다. 금융 공기업 6곳의 상임이사와 상임감사 중 절반 이상이 임기를 넘기고도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존 자리를 계속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본보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공기업인 신용보증기금ㆍ주택금융공사ㆍ예금보험공사ㆍ산업은행ㆍ기업은행ㆍ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6곳의 상임이사ㆍ감사 임기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 29명 중 55%인 16명(공석 3명 포함)이 임기가 지났거나 공석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원의 절반 이상이 2년 임기를 채운 뒤 연임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공공기관의 임기가 만료된 임원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상임이사의 경우 6개 금융공기업 상임이사 정원은 총 23명인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1명(공석 3명 포함)이 임기 만료와 공석 등의 이유로 계속 출근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을 상대로 신용보증 업무를 담당하는 신용보증기금은 상임이사 5명 중 무려 4명이 임기를 넘겼다. 이 중엔 임기가 만료된 지 7개월이 지난 상임이사도 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신보와 같은 준정부기관 임원의 임명권은 기관의 장이 쥐고 있고, 기관장이 1년 단위로 연임시킬 수 있다. 하지만 황록 이사장은 임원 연임 결정을 미루다 최근 돌연 사의를 표했다. 후임 이사장 선임까지 적어도 한 달 이상 시간이 걸리는 걸 고려할 때 상임이사 인사는 또 다시 미뤄질 수밖에 없다.
금융공기업 상임이사는 해당 기관의 사업부서를 총괄하는 정책 결정권자다. 연임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임이사가 자리만 지키고 있을 경우 주요 결정이 한없이 미뤄지는 등 경영 공백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신보 노조의 한 간부는 “정책결정권자이자 인사평가자인 임원들은 나갈 날만 기다리고 이사장은 사표를 쓴 상황에서 누가 나서 일하겠느냐”고 말했다.
상임감사의 경우 신보를 제외한 5곳이 모두 임기를 넘겼다. 신형철 산은 감사는 지난해 4월, 윤창근 예보 감사는 지난해 5월, 이수룡 기은 감사는 지난해 10월 임기가 끝났다. 산은과 기은 감사는 금융위원장이, 예보 감사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들 기관은 모두 “정부가 후임자를 정해주지 않아 신임감사를 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상임이사와 감사 자리 외에도 금융위원장이 임명하는 비상임이사의 경우도 총 37명 중 11명(공석 2명 포함)이 임기를 넘겼다.
금융권에선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의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면서 후속 임원인사가 줄줄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런 데도 금융위는 별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금융위 인사담당 관계자는 “상임이사 임기가 만료됐는데도 계속 일하는 건 해당 기관장이 신임해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며 “법에 어긋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임기만료 후에도 계속 일하게 두는 관행은 공기업이라 가능하지 민간 금융회사가 그랬으면 주주들의 큰 반발에 부딪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헌 서울대 교수는 “임기를 채운 인사를 내버려두는 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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