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 일본에 ‘살인 출산’ 제도가 도입된다. 아이 10명을 낳은 ‘출산자’에게 누구든 한 명을 살해할 권리를 국가가 준다. 남성도 인공 자궁을 이식해 출산자가 될 수 있다. 허락 없이 누군가를 살해하면 죽을 때까지 아이를 낳고 또 낳는 ‘산형(産形)’을 받는다. 출산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살의인, 무라타 사야카(40)의 단편집 표제작 ‘살인출산’의 설정이다. 무라타가 만든 세계에서 살인은 악(惡)이 아니며, 피살은 비극이 아니다. 10명을 태어나게 하는 희생이다. 출산자는 건강과 시간을, 피살자는 생명을 바쳐 사회를 지탱한다.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언제 누가 나를 죽이겠다고 지목할지 모르기에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결혼과 출산을 강요 받지 않기에 자유롭다.
무라타는 세계의 질서를 태연하게 유린하는 이야기로 ‘크레이지 사야카’로 불린다. 그는 ‘우리가 맹신하는 정상(定常)은 정말 정상인가’를 묻는다. “우리 뇌 속에 있는 상식이나 정의는 뇌가 흙으로 돌아가면 소멸해요. (…)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고 싶으면, 당신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는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어요.”(‘살인출산’)
책에 실린 4편은 잔혹한 철학 소설이다. ‘청결한 결혼’은 “연애 감정 없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단지 가족이라는 파트너를 마주하고 싶어”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다. 아이를 원하게 된 부부는 잠자리를 하는 대신 “의료행위로서의 섹스”로 임신하는 ‘청결한 번식(Clean Breed)’ 서비스를 받는다. 부부 간 성 역할 분담, 일부일처제의 모순 같은 갈등 요소를 극단적으로 제거한 관계에서 부부는 평등해진다.
‘트리플’에선 남자든 여자든 세 명이 하는 연애가 자연스럽다. 남녀의 ‘전통적 성관계’를 목격한 주인공은 역겨워한다. “나도 저런 행위 끝에 태어났을까? 구역질이 솟구쳐서 공원에 도착하자 마자, 땅 위에 모조리 게워냈다.” ‘올바르지 않기에 차별받아 마땅한 사랑’이 존재하는 세계는 정상인가. 무라타의 물음이다. 5쪽짜리 짧은 소설 ‘여명’은 의학이 발달해 자살로만 죽을 수 있게 된 세계를 그린다. 노화와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활기를 잃었다. “의료가 이렇게 발달하기 전에는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편하고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구태여 남의 눈을 의식해 가며 감각 있게 죽는 방법을 찾아 자기 장사를 치러야 하니까.”
무라타는 금기를 모르는 사람처럼 살인과 성관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국내 출판사 현대문학은 이번 단편집을 ‘19세 미만 구독 불가’로 지정했다. 무라타는 ‘편의점 인간’으로 2016년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이영미 옮김
현대문학 발행∙204쪽∙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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