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의 향방을 좌우하는 외교전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북한의 최고위급 요인이 속속 방한하고 청와대를 중심으로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물밑 작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특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동시에 평창 무대에 등장해 판이 커졌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미국과 북한이 진정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고 문재인 정부가 북미 대화를 실마리를 찾기 위한 ‘중재외교’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김여정의 올림픽 참가로 남북대화의 문호는 활짝 열린 분위기다. 청와대는 김여정을 포함한 고위급 대표단의 파견을 남북 긴장완화를 향한 북한의 의지로 평가하면서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대표단 오찬 일정을 잡았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도 이날 강릉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쳐 남북 관계에 훈풍을 불어넣었다. 특히 ‘J에게’를 비롯한 한국 가요와 팝송을 대거 선보여 체제선전에 치중할 것이라는 우려나 선발대 일정 번복을 둘러싼 의심을 씻었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안보 위기를 일소할 수는 없다. 남북 신뢰를 바탕으로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고 최종적으로 북한 핵·미사일 해법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평화 프로세스의 목표는 문재인 정부도 잘 알고 있다. 문 대통령은 8일 평창 올림픽 참가를 위해 방한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런 과제를 분명히 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비핵화는 나란히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과의 만찬에서 전한 뜻도 한가지다.
물론 워싱턴과 평양이 최근까지 주고받은 아슬아슬한 메시지를 감안하면 양측의 대화는 난제 중의 난제다. 다만 최근 들어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는 듯한 북미 양측의 미세한 움직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대북 경제제재 및 제한적 타격론이 미국 조야에서 가시지 않았지만 워싱턴에서는 “일단 지켜보자”는 메시지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북한도 외무성 당국자의 입을 빌어 "남조선 방문 기간 미국 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선을 긋긴 했지만 도리어 미국의 의중을 떠보려는 뜻이 강해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이 8일 건군절 열병식 행사의 규모를 축소하는 등 최대한 자제하는 자세를 보인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외신을 대대적으로 초청해 열병식을 생중계했던 과거와 달리 외신 취재를 일절 허가하지 않은 채 이날 오전 행사를 녹화중계로 내보냈다. 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둔 군사 퍼레이드는 핵보유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도발행위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북한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북미대화의 여지를 만들려면 이런 상황까지 감안해서 북한을 견제·견인하고 미국을 설득하는 적극적 자세로 임해야 한다. 북한이 김여정을 올림픽에 파견한 전략적 의미가 절대 작지 않다. 미국이 여전히 제재국면을 강조하면서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북한 비핵화를 출구에 둘 때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지렛대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도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한정 상무위원을 만나 모종의 메시지를 전한 뜻도 비슷할 것이다.
펜스 부통령이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나 김여정과 올림픽 기간에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북미 모두 올림픽이 끝나고 또다시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지 않으려면 평창 올림픽을 대화 접점을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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