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안현수 /사진=연합뉴스
총성이 울리자 근육질의 벤 존슨(57ㆍ캐나다)은 야생마처럼 무섭게 뛰어나갔다. 후반이 강한 칼 루이스(57ㆍ미국)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추격을 벌였으나 스타트와 동시에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타임 보드에는 세계 기록인 9초83이 찍혔고 인간 탄환 루이스는 쓸쓸히 고개를 숙였다.
역대 육상 경기를 통틀어 최고의 명승부로 아직도 회자되는 존슨과 루이스의 1987년 로마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100m 결승전이다. 둘의 라이벌 관계는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제를 모은다. 세계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있는 당시 경기는 조회 수가 약 100만건에 이른다.
1년 뒤 1988 서울 하계 올림픽에서 설욕을 노리는 루이스와 1928년 퍼시 윌리엄스 이후 캐나다 선수로는 첫 남자 100m 올림픽 금메달을 다짐한 존슨의 리턴 매치는 대회의 전부라고 할 만큼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뜻밖의 변수에 엉망진창이 된다.
존슨이 100m에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세계 기록을 9.79로 앞당기며 또 한 번 루이스를 제쳤으나 이어진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인 근육강화제 성분이 검출됐다. 서둘러 김포 공항으로 가서 도망치듯 출국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의 뒷모습도 빛의 속도였다.
육상 영웅에서 졸지에 사기꾼으로 전락한 존슨은 이후 “세계 기록을 세운 1987년 때부터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고 인정했다. 그가 가진 각종 메달들은 우수수 박탈당했다. 존슨은 “스테로이드를 하면 내 몸이 타이트해지는 걸 느꼈다”고 뒤늦게 반성했다.
벤 존슨 약물 파동이 세계를 강타했지만 이후에도 올림픽 스타 선수들의 도핑 적발은 멈추지 않았다. 우사인 볼트(32ㆍ자메이카)의 은퇴 무대에서 마침내 설욕에 성공한 단거리 스타 저스틴 게이틀린(36ㆍ미국)이 있고, 여자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31ㆍ러시아)는 금지 약물인 멜도늄을 수년간 복용한 것이 드러나 꿈에 그리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한국의 수영 영웅 박태환(29ㆍ인천시청)도 도핑 양성 반응이 나타나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심지어 러시아는 국가 주도의 금지약물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땄지만 결국 11개의 올림픽 메달(금 4ㆍ은 6ㆍ동 1)을 박탈당했다.
러시아발 도핑 스캔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선수생활을 연장하고 싶다며 거액의 연봉과 아파트 등의 각종 편의를 받고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도 포함돼 있다. 러시아의 도핑 실태를 조사하고 폭로한 맥라렌 보고서에 깨끗하지 못한 선수 111명 중 하나로 이름이 언급되며 평창 행이 좌절된 안현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대로 불명예 은퇴할 위기에 처해있다.
소치 대회에서 남자 쇼트트랙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획득한 안현수의 메달도 추후 조사 결과 사실로 판명이 날 경우 박탈당하게 된다. 안현수의 선수생활 말년에 벤 존슨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평창에 도착한 토마스 바흐(65) IOC 위원장은 개막이 임박해 구제된 28명의 러시아 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못한 빅토르 안의 불참과 관련해 "IOC 독립위원회가 엄선한 결과로 선수 개개인에 대한 정보와 여러 방법을 통한 조사 자료를 토대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강릉=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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