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개헌안에 예산법률주의 함께
‘증액시 정부 동의권’ 폐지 추진
예산권 의회 이양 명분 불구
선심성ㆍ쪽지예산 더 심해질듯
전문가들 “재정건전성 악화에
예산 주고받는 야합 가능성도”
오는 6월 개헌을 목표로 삼은 여당이 헌법에 명시된 ‘예산 증액에 대한 정부 동의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헌법 제57조는 정부 동의 없이 국회가 예산을 늘리거나 새로운 사업을 편성할 수 없다고 돼 있는데, 앞으로는 국회가 정부의 견제를 받지 않고 예산 편성권을 행사하겠다는 이야기다. 행정부에 집중된 예산권을 대의기관인 의회로 이양한다는 명분을 내 세웠지만 외려 국회의 선심성ㆍ지역구 예산 끼워 넣기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며 논란이 일고 있다.
7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지난 1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예산법률주의 도입과 예산 증액 정부 동의 폐지 등이 헌법개정안 당론으로 결정됐다. 여당은 이달 중 국회에서 개헌안을 논의한 뒤 3월 발의를 거쳐 6ㆍ13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계획이다.
예산법률주의 도입과 증액 정부 동의권 폐지는 예산의 심의ㆍ의결에 머물러 있는 국회의 예산 권한을 확장하기 위한 취지다. 헌법 제54조에는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하고, 국회가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ㆍ확정한다고 돼 있다. 또 제57조에는 국회가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 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편성권과 증액 동의권을 통해 예산안 처리를 주도하고, 국회는 감액만 하는 보조 기능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불만이었다.
예산법률주의는 예산을 조세와 마찬가지로 법률로 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사업의 명칭과 금액만 나열한 예산이 법률이 되는 만큼 재정 지출에 대한 구속력이 더 강해진다. 예산의 법적 성격이 명확해지면 국회가 심의ㆍ확정한 예산을 행정부가 제대로 집행하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도 물을 수 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도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쟁점은 예산 증액에 대한 정부 동의권 삭제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의 총액 범위 내에서 국회가 자유롭게 증액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여당안의 골자다. 지금은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하고, 심의 과정에서 국회 측의 증액 요구가 있을 경우 정부가 동의해 주는 형태다. 의원들은 예산안 제출 이전부터 통과될 때까지 당국에 각종 예산 편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증액을 최대한 막는 게 사실 기재부 예산실의 일이다. 여당의 개헌안대로라면 이 같은 기재부의 제동 장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일각에선 증액 동의권 폐지를 통해 이미 만연화돼 있는 쪽지예산을 ‘양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산 편성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예산에 대한 국회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기재부라는 곳간에서 곶감을 빼먹는 형태”라며 “이를 국회 내 공식적인 협의 과정으로 바꿔야 예산에 대한 국회의 역량도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예산 증액에 대한 정부 동의권이 폐지되면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마지막 보루’가 사라질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정부가 쌓아온 예산 편성의 전문성과 이를 토대로 보장됐던 재정건전성이 무너질 수 있는데다, 예산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상호 견제 기능도 없어질 공산이 크다. 미국도 의회가 주도적으로 예산을 편성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이 의회 예산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국회의 예산권 강화는 증액권 강화가 아니라 심의나 감시 기능 보강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액 한도 내 증액’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오히려 한도 내에서는 포퓰리즘에 기반한 선심성 예산이나 지역구 예산을 주고받는 ‘야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지금도 예산철이면 법안 통과를 위해 정당 간 담합이나 짬짜미(로그롤링ㆍlog rolling)가 비일비재한데 국회에 증액권까지 주면 당리당략에 따른 편성 경향이 강해져 예산을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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