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스키종목 공식 코스 설계자
지난해 영상 12도의 세계선수권
성공적으로 끝내 능력 인정 받아
“지금이 설질ㆍ습도 등 최고 상태”
사람들은 그를 ‘미스터 스노맨(Mr. Snowman)’이라고 부른다. 따뜻한 영상 20도에서도, 비가 오는 날씨에도 새하얀 함박눈을 내리게 하는 마법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프리스타일 스키 종목에 필요한 경기 코스를 뚝딱 만들어낼 수도 있다. 열흘 전 평창에 도착해 매일 영하 15도를 밑도는 산 속에서 작업 중이라는 미힐 드 라우터(Michiel de Ruiter)씨는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코스 설계자(Course Builder)’다.
24년간 인공 눈 만들기 분야 전문가로 활동한 드라우터는 원래 네덜란드 프리스타일 스키 국가대표였다. 올림픽에도 두 번(1992년 알베르빌올림픽,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이나 출전했지만, 성적은 신통찮았다.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1996년 제설(製雪) 회사를 설립해 지금까지 영화 촬영 현장부터 국제스키연맹(FIS)이 주관하는 국제대회까지 다양한 곳에서 눈을 만들고, 코스 설계 작업을 해왔다. 드라우터는 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벌써 다섯 번째”라며 “지난해 한창 더운 여름에도 강릉에 와 평창올림픽 사전행사를 위한 어린이용 눈 미끄럼틀을 만든 적 있다”며 웃었다.
평창올림픽 프리스타일스키 코스 설계는 개막을 2주 가량 앞둔 지난달 말부터 시작됐다. 너무 일찍 만들면 눈이나 비가 내린 후 코스를 수정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드라우터는 “얼마 전에 5㎝ 정도의 천연 눈이 내려 치우느라 고생했다”면서 “경기할 땐 건조한 인공 눈이 훨씬 좋기 때문에 올림픽 기간 눈이 내리지 않길 바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스노메이커(snow maker) 30여명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부지런히 스키장에 인공눈을 만드는 동시에 자연눈을 치우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드라우터는 “지금은 평창의 온도와 습도, 설질(雪質)이 최고의 상태”라고 평가했다.
드라우터가 코스 설계 및 인공 눈 전문가로 평창에 오게 된 건 지난해 스페인 시에라 네바다에서 열린 FIS 스키세계선수권대회 당시 보여준 능력 때문이다. 당시 기온이 영상 12도로 올라가는 바람에 경기를 치러야 할 스키점프대에선 물이 뚝뚝 흐르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드라우터가 임기응변으로 물을 넣어 얼린 파이프를 활용해 눈을 만들어냈고 대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는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FIS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계자가 찾아와 평창에 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드라우터는 지금 램프를 세우는 등 에어리얼 코스 설계 막바지 작업 중이다. 에어리얼 종목에선 작은 요철 하나가 선수 안전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심혈을 기울여 인공 눈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추운 날씨에도 모든 스태프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 걸 보면 평창에선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코스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내가 언제든 수백 톤의 눈을 더 만들어낼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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