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법학교수가 지난 5일 뇌물공여죄 등을 인정해 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를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이를 위해 A4용지 100장이 넘는 항소심 판결문을 몇 차례 정독했다고 밝혔다.
박찬운(56ㆍ사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이재용, 잠시 감옥에서 휴가 나왔다고 생각하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법률가가 어떤 특정 사건의 법원 판결을 비판할 때는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항소심 판결이 정의 관념에 반한다는 여론의 빗발치는 화살을 맞고 있음에도 그것을 쉽게 비판하지 못 했다”고 운을 뗐다.
박 교수는 A4용지 164장에 이르는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 원문을 검토한 결과, 항소심 판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작성한 수첩의 증거능력 문제와 ▦이 부회장 뇌물로 인정된 금액의 액수가 대법원에서 쉽게 항소심 판단을 깰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1심에서는 증거로 채택된 안 전 수석의 수첩이 2심에서는 채택되지 않은 데 대해 “항소심의 증거능력 판단은 잘못됐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앞서 안 전 수석의 수첩을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뇌물이 오고 간 정황을 입증할 간접증거로 채택한 바 있다.
박 교수는 먼저 항소심 재판부 판결문에서 안 전 수석의 수첩에 증거능력이 없는 이유로 대법원 판례를 들었는데, 이는 원 판례의 취지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타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한 진술이 기재된 서류의 경우엔 그 진술의 진실성과 관계되는 사실에 대해선 증거능력이 없다”며 “(다만) 그와 같은 진술을 하였다는 것이나, 진술의 진실성과 직접 관련 없는 간접사실에 대한 증거로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본래 취지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또 항소심에서 유죄로 판결한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에 대해서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라며 날을 세웠다. 앞서 항소심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 훈련을 위해 제공한 마필 등에 대한 용역대금 36억원만을 뇌물로 인정했다. 나머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16억원), 코어스포츠 송금(77억원) 혐의 등에 대해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은 훈련에 쓰인 마필의 소유권이 최씨에게 넘어가지 않았고, 마필의 사용 수익만을 뇌물로 인정하면서 그 액수를 ‘불상의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설혹 마필의 소유권이 최씨에게 이전되지 않았다고 해도 상당기간 고가의 마필을 무상 사용했다면 그 사용대금 상당액이 뇌물이라고 할 수 있다”며 “정상적인 재판이라면 재판부가 이 부분의 액수 산정을 위해 직권조사를 하거나 특검 측에 공소장을 변경해 입증토록 요구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여기에서의 액수는 뇌물의 총액에 따라 적용법조와 양형이 달라지기 때문에 만연히 산정불가의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항소심이 중대한 심리미진의 위법을 범했다고 판단할 만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양대 법대를 졸업한 박 교수는 1984년 사법시험(26회)에 합격, ▦서울지방변호사회 섭외이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국장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쳐 현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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