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악기인 장구를 많은 분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본딧말은 장고가 맞습니다. ‘지팡이 장(杖’)과 ‘북 고(鼓)’자를 써서 장고라 한다죠. 물론 긴 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장구로 사용하고 있고 장고와 함께 표준어가 되었죠.
그런데 장구의 한자를 獐狗라고 쓴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노루 장’자에 ‘개 구’자를 쓰는 것이죠. 여기엔 장구를 노루가죽과 개가죽을 써서 만들었다는 연유가 있습니다.
한반도로 그 영역을 넓혀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사슴 종류는 누렁이 혹은 말사슴, 백두산사슴이라고 부르는 붉은사슴(북한 백두산 인근에만 서식)과 함께 대륙사슴이라고도 부르는 꽃사슴, 노루, 고라니와 사향노루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슴들 중 오늘은 노루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죠.
엉덩이가 하얀 작은 염소
노루의 영어명은 Roe 혹은 Roe deer이고 학명은 Capreolus pygargus입니다. Capreolus는 염소를 뜻하는 Capra와 귀엽다 혹은 작다를 뜻하는 -olus가 붙어 만들어진 노루의 속명입니다. 또 다른 속명인 pygargus는 엉덩이를 뜻하는 puge와 하얗게 빛난다는 의미의 argos가 합쳐진 단어로 합치면 ‘엉덩이가 흰’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노루는 ‘엉덩이가 하얀 작은 염소’를 뜻합니다.
물론 노루는 염소가 아닙니다만, 엉덩이가 하얀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사슴과 중 엉덩이가 하얀 사슴은 노루가 유일합니다(물론 꽃사슴도 엉덩이가 하얗지만 우리나라 고유종은 멸종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고라니와 달리 노루에겐 세 갈래 뿔
노루는 고라니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고라니는 수컷의 송곳니가 발달하고 뿔이 없는 반면, 수컷 노루는 작은 세 갈래의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 뿔의 아래쪽에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우둘투둘한 돌기들이 많이 나 있는 것도 특징이죠. 그 밖에도 노루는 고라니에 비해 큰 귀를 가졌고, 하얀 입술에 눈망울도 큼직하니 더 예쁘게 생겼습니다.
노루는 발굽동물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착상지연 혹은 배아휴면기를 가지는 동물입니다. 8~9월 교미 후 수정란이 바로 자궁에서 발달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자라는 셈이죠. 보통 이듬해 6월경에 분만합니다. 곰이나 족제비류에서도 나타나는 착상지연의 가장 큰 이점이라면, 번식하기에 충분한 조건이 아닐 때는 이를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이죠.
내륙노루와 사뭇 다른 제주노루
과거 노루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한 종이 있는 것으로 간주했지만 현재는 시베리아노루와 유럽노루로 분류됩니다. 당연히 우리나라 노루는 시베리아노루에 해당하죠. 노루의 서식영역은 아시아 전역으로, 한반도에서 카자흐스탄까지 넓게 퍼져 있습니다. 이 노루 또한 다시 3가지 아종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노루는 중국 톈산산맥ㆍ몽골ㆍ극동러시아에 서식하는 노루와 같은 아종에 속합니다.
국내에서는 주로 산악지대를 기반으로 서식하며, 제주도에도 분포하고 있죠. 재미있는 것은 제주노루의 유전자 연구결과 우리나라 내륙 노루와는 사뭇 다른 형태가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아마 지난 빙하기 이후 대륙 노루 중 일부가 제주도에 고립되어 독자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주노루와 내륙노루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외형도 매우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다만 제주노루의 경우 개체수가 늘어 농작물 피해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2013년 7월부터 수렵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가가면 ‘컹컹’ 짖는 영역동물
선호 서식지를 살펴보면 저지대는 고라니가 주로 서식하며, 노루는 산악지역에 좀 더 높은 밀도로 서식합니다. 물론 높은 지역에 서식하는 고라니도 있지만, 노루는 아래로는 잘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일반인들이 노루를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죠. 세력권을 유지하는 종인지라, 산에 가면 사람을 향해 거리를 두고 따라오면서 ‘컹컹’ 짖기도 합니다. 노루나 고라니가 짖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서운 동물이 쫓아온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겨울산을 등반하다 보면 아침 일찍 눈밭에 또각또각 지나간 하트 모양의 예쁜 노루 발자국을 볼 수도 있습니다. 매우 춥고 눈도 많이 오는 이번 겨울이 다 가기 전 새로 보드랍게 뿔이 돋아 오르는 노루를 한번 찾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글ㆍ사진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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