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 받던 한 남자 프로 테니스 선수가 부진을 거듭한다. 세계 랭킹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퇴물 취급을 받는다.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윔블던 대회도 와일드 카드로 겨우 출전한다. 하지만 인생 반전의 기회가 온다. 젊은 여자 테니스 스타를 만나 사랑을 속삭이며 활력을 되찾는다. 남자는 와일드 카드 출전자 최초로 윔블던 우승까지 노린다. 폴 베타니와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한 ‘윔블던’(2004)의 줄거리다.
윔블던이 역사상 최초로 영화 촬영을 허가해 화제가 됐던 이 영화는 테니스 경기 장면을 스크린에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속 주인공 피터 콜트(폴 베타니)는 크로아티아 테니스 선수 고란 이바니세비치를 떠올리게 한다. 이바니세비치는 2001년 윔블던 사상 처음으로 와일드 카드 출전 우승 기록을 세웠다. 이바니세비치와 베타니는 190㎝가 넘는 장신이다. 두 사람은 냉기 어린 얼굴도 닮았다. 테니스 팬들이 이 영화에 더 눈길을 둔 이유다.
‘윔블던’ 뿐 아니라 테니스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남녀의 농밀한 연정을 담고 있다. 미국 유명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애니 홀’(1977)과 ‘매치 포인트’(2005)도 이에 속한다. ‘애니 홀’에서 희극작가 앨비(우디 앨런)는 테니스장에서 우연히 만나 테니스를 함께 친 가수 지망생 애니(다이앤 키튼)에게 단번에 빠진다. 사랑한다는 말이 한번도 나오지 않으면서도 한 여자를 향한 한 남자의 마음이 온전히 담긴 이 영화에서 테니스는 사랑의 촉매로 작용한다. 앨비와 애니는 라켓으로 공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을 키운다.
‘매치 포인트’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테니스 강사 크리스(조너선 리스 마이어스)의 삼각 연예와 범죄 행각을 그린다. 크리스는 테니스 강습으로 부유층 자제 톰(매슈 구드)과 그의 여동생 크리(에밀리 모티머)와 인연을 맺는다. 크리스는 크리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한다. 테니스가 오작교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크리스는 톰의 옛 연인 노라(스칼릿 조핸슨)와 부적절한 관계에 빠진다. 노아 바움벡 감독의 ‘오징어와 고래’(2005)도 테니스로 이어진 남녀의 인연을 담는다. 유부녀와 테니스 강사의 옳지 못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테니스가 남녀의 사랑의 매개체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운동보다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테니스의 특징을 들 수 있다. 랠리를 주고 받는 과정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담을 수 있고, 남녀의 밀당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개봉한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은 1973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테니스 성 대결을 스크린에 옮겼다. 여자 테니스 최강 빌리 진 킹(에마 톰슨)이 전 윔블던 남자 챔피언 바비(스티브 카렐)에 맞서 선전하는 모습을 담았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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