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가동해 정부 비판적인 독립영화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지원 대상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한 사례 27건이 확인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 정비’ 문건과 정부보고서 등에서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고 6일 밝혔다.
앞서 특검 수사 및 감사원 기관운영 감사를 통해 밝혀진 영화계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는, ‘다이빙벨’과 ‘천안함 프로젝트’ ‘자가당착’ 등을 상영한 영화제 또는 상영관에 대한 사후 지원 배제 5건과, ‘연인들’ ‘산’ ‘바당감수광’ 등 예술영화 지원 배제 3건으로, 총 8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로 그 동안 알려진 영화계 블랙리스트가 극히 일부 사례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진상조사위는 박근혜 청와대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국정원, 영진위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독립영화를 지원 배제한 것으로 파악했다. 청와대가 ‘문제영화’ 배제 지침을 내리면 문체부를 통해 영진위에 하달됐고, 영진위는 사회적 논란이 되지 않도록 심사위원 구성과 심사과정에 내밀하게 개입해 문제영화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국정원은 수시로 문제영화에 대한 동향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상조사위가 이번에 확인한 블랙리스트 영화는 독립영화 제작지원사업 10건과 다양성영화 개봉지원사업 17건 등 총 27건이다. 중복사례를 제외하면 17건이다. ‘두 개의 문2’(‘공동정범’) ‘밀양아리랑’ ‘그림자들의 섬’ ‘구럼비 바람이 분다’ 등 용산참사ㆍ밀양 송전탑ㆍ한진중공업ㆍ제주 강정 해군기지 같은 시국사건을 다룬 작품들이 대다수 포함됐다. ‘불안한 외출’ ‘자백’ ‘트웬티 투’ 등 국가보안법ㆍ간첩조작사건ㆍ일본군 위안부 같은 민감한 소재를 다뤘거나, ‘불온한 당신’과 ‘산다’처럼 성소수자ㆍ노동 문제를 담은 영화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 개봉해 358만 관객을 동원한 ‘귀향’의 경우, 국정원이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관인 인디플러스에서 상영을 금지하고 일반극장 상영관을 최소화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베를린비엔날레 은사사장 수상작인 ‘위로공단’에도 지원 배제 지시가 내려왔으나 심사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지원작으로 선정된 사실도 밝혀졌다.
진상조사위는 “좌파 혹은 반정부를 이유로 지원사업에서 특정 영화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은 공정성과 평등한 기회 보장을 훼손한 위법 행위”라며 “영진위 사업 전반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심사 과정의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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