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재단 세워 자유주의 활동
그리스ㆍ이스라엘 등 우파와 앙금
헝가리 출신으로 냉혹한 투자로 거부를 이룬 미국의 헤지펀드 자산가 조지 소로스가 유럽과 중동에서 동시에 극우세력이 낙인 찍은 ‘공공의 적’이 됐다.
4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서는 구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던 신생국 마케도니아가 ‘마케도니아’라는 국명을 쓰는 데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주최측 추산 150만명이 넘는 그리스 시민들은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다”라고 외쳤다. 그리스 정부는 당초 ‘마케도니아’가 그 나라의 한 지방 명칭이라며 국호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협상 도중 이를 부분적으로 허락할 조짐을 보이자 황금새벽당 등 극우 성향 정치세력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집회에서 그리스ㆍ마케도니아 문제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소로스가 성토대상이 됐다는 것. 집회 주최자 중 한 명인 니나 가출리스는 국호 분쟁을 중재하는 매슈 니메츠 유엔 특사를 가리켜 “소로스가 운영하는 비정부기구에서 활동했다”며 소로스가 ‘반 그리스’ 음모의 배후라고 주장했다. 소로스에 대해 형성된 유럽 우파진영이 막연한 반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같은 날 지중해 건너 이스라엘에서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소로스를 향해 날을 세웠다. 예루살렘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아프리카의 수단과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을 아프리카 제3국으로 추방하는 절차를 공식 개시하면서 “이스라엘의 난민 추방 반대 시위를 소로스가 뒤에서 돈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공한 유대계 금융자본가인데도 소로스가 이스라엘 정부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단체 ‘비첼렘’(B’Tselem)을 지원한 탓에 네타냐후는 틈만 나면 그를 비난하고 있다.
소로스가 욕을 먹는 건 열린사회재단(OSF)를 세워 동구권 국가들의 민주화 과정을 지원하면서 쌓인 우파 진영과의 앙금 때문이다. OSF는 헝가리, 루마니아 등의 민주화를 지원하면서 자유주의ㆍ반권위주의 활동도 함께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주의 세력과 갈등을 빚었다. 이에 따라 고향 헝가리에서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수도 부다페스트에 소로스를 공개 비난하는 광고를 걸어 놓았고, 루마니아에서도 집권 사회민주당이 지난해 초부터 이어지는 반정부 집회 배후로 소로스를 지목한 상태다. 역사학자 앤 애플바움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동유럽 우파 지도자들이 반미ㆍ반서구로 비처지는 걸 피하면서도 서구 가치를 부정하기 위해 소로스를 표적으로 세웠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로스 자신은 이런 논란에 개의치 않고 있다. 파운드화를 공격, 영국의 외환위기로 돈을 번 냉정한 투자자답게 권위주의 정권과 타협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지난해 10월에는 OSF에 180억달러(약 20조3,000억원)를 쾌척했고 올해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도 등장해 “전세계의 열린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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